좋아했던 애가 전혀 몰랐던 사이에 여자친구와 다정한 셀카를 찍어 올렸다. (본편)

WR. 고은

 

 

 


그럴 때가 있다. 내 것이 아니었던 것을 갖고 싶어질 때. 지나가다 우연히 애견샵 강아지와 눈이 마주쳤는데 내게 꼬릴 흔들었을 때가 그렇고, 전혀 관심도 없던 우마이봉 타코야키 맛을 한 번 맛봤을 때가 그렇다. 그리고 혼자 좋아했던 애가 다른 애와 다정하게 찍은 사진을 봤을 때, 그 욕심은 배로 커진다. 그게 지금이다.

사진을 올린 지 1시간도 안됐으니, 아직 그는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사진 밑으로 달린 답글을 보면 확실하다. 이곳에서 불과 15분 거리. 가기엔 충분하다. 그가 무슨 말을 할지는 모른다. 하지만 내 귀로 확실히 들어야겠다. 지금 물어보지 않으면 나는 또 그의 곁에서 한 발짝 더 멀어질 테니까.

이럴 때면 긴토키 녀석이 도움된다. 마음이야 수천 번 더 먹었지만 도저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으니. 그의 격려를 받자니 없던 용기가 생겨났다고나 할까. 먼저 두고 나온 건 조금 마음에 걸리지만 다시 온다고 했으니 뭐, 알아서 점프라도 보고 있겠지.

벌써 타카스기가 있던 가게의 표지판이 보인다. 저 안에 내가 마주해야할 진실이 있다. 괜찮다, 괜찮아. 여기까지 왔으니까 한 발만 더 내딛는 거다.

딸랑-.

“아…. 타카스기?”

문이 열리고, 두 남녀가 밖으로 나왔다. 새까만 가쿠란, 하얀 안대, 날카로운 눈매. 타카스기다. 그에게 다가가기 직전, 기어이 보고 말았다. 옆에 있던 노란머리 여자애와 팔짱을 낀 타카스기를.

“이제 끝났으니까 가라.”

“아이, 신스케님. 오늘은 감사했어요, 그러면 다음에 또!”

노란머리는 잔뜩 애교 섞인 목소리로 그에게 인사를 하더니 이내 만화 속 여주인공처럼 손을 흔들며 멀어졌다.

지금이면 말을 걸어도 될까. 하지만 보고 싶지 않은 걸 봐버린 지금, 아까 냈던 용기는 다 무너져버렸다. 그래, 나 같은 건 낄 틈이 없었으니까. 애초에 내 것도 아니었고. 귀로는 못 들었어도 눈으로 확인했으니.이걸로 됐다. 이제 끝이다.

“어이, 즈라.”

아무 말도 못하고 조용히 자릴 뜨려는데, 예의 그 낮은 목소리가 내 이름을 불렀다. 늘 듣고 싶었고, 들으면 심장을 울리는 그 목소리가. 정확히 말하면 이름은 아니지만.

“즈라가 아니라 카츠라다.”

“왜 거기 있냐.”

“자네가 알 바 아닐세.”

“흐응? 근데 왜 꼭 이쪽을 쳐다본 것 같았을까? 왜 그렇게 땀이 났지?”

“자, 자넬 본게 아닐세! 그저 그 옆에 있던 노란 머리가 신기해서…. 그리고 이게 땀이든 뭐든 무슨 상관인가. 내가 자넬 보려고 뛰어오기라도 했단 말인가!”

“바보같이. 뛰어왔구나.”

그는 슬며시 웃더니 한 걸음, 한 걸음 내게 다가왔다.

“뭐, 뭐야.”

이제 그는 내 바로 앞에 있었다. 아무 말도 않고 우리는 서로를 쳐다보기만 했다.

“하고 싶은 말 없어?”

그가 물었다. 아, 나는 뭐라고 해야 할까. 물어볼까.

“괜찮으니까 말해 봐.”

저렇게 부드럽게 말하는 타카스기는 처음 본다. 그렇게 상냥한 얼굴로 물어보면 내가 숨길 수도 없잖아.

“쳇. 그러니까 오해는 하지 말고, 그냥 궁금했을 뿐이니까! 그 아까 노란머리랑은 무슨… 사이냐고….”

“무슨 사이? 큭큭, 아하핫! 즈라, 너, 크흡.”

아? 왜 사람이 용길 내서 묻는데 대답은 않고 웃는 거지? 내가 뭘 잘못했나? 아니면 얕보인건가?

“왜 웃어! 대답을 하란 말이다. 누구는 겨우 물어봤는데.”

“큽, 하아. 그러니까 그게 궁금해서 여기까지 달려왔단 말이지?”

“달려오긴 누가!”

“너 말이다, 바보. 글쎄, 부탁을 받은 사이라고나 할까?”

“무슨 부탁?”

“일일 남자친구. 단기로 돈 벌기엔 썩 좋거든. 별로 하는 것도 없고.”

일일…. 남자친구. 남자친구?! 왜 하필 그런 걸 하는 거지?! 그러면 대체 얼마나 많은 녀석들이 이 놈과 팔짱을 끼고 카페를 가고 영화를 보고 그리고….

“어이, 즈라. 너 무슨 생각을 하는 거냐. 그냥 가볍게 카페에 가거나 밥을 먹는 정도야. 돈을 더 줄수록 이런 저런 걸 할 수도 있겠지만.”

들켰나. 귀신같은 놈. 몇 번 날 보지도 않았으면서 내 생각을 훤히 다 읽다니. 아무튼, 돈을 주기만 하면 남자친구를 해준다는 말인가?

“그러면, 돈을 어떻게 계산하는데?”

“왜. 하고 싶나?”

“하고 싶긴! 그냥 나도 그런 걸 해보면 어떨까 해서 말이다.”

“글쎄 넌 못할 것 같은데. 너 같은 눈치 제로인 범생이가 뭘 하겠냐.”

“뭐야?”

“그것보다, 나를 사라. 네 남자친구 정돈 해줄 수 있어. 물론 몇 시간 뿐이지만.”

어, 어? 지금 얘가 뭐라고. 내 남자친구를 해준다고? 내가 말하지도 않았는데?!

“대답이 없네. 싫은가 보군. 그럼 됐고, 간다.”

“아이 참, 자네도 성질 한번 급하군. 언제 싫다고 그랬나.”

“그러면 하겠다는 거지?”

“어? 어어. 그렇지. 되어줘, 내 남자친구.”

“그래, 일단 이것 좀 놓고.”

아, 대체 이 대화는 어떻게 흘러가는 걸까. 방금 한 말도 생각 안 나는데 어느 새 그의 소매를 잡고 있었다. 그래서 정리해보면 타카스기가, 바로 그 타카스기 신스케가 내 남자친구를 해준다는 말인가? 이게 꿈일까? 꿈이 아니라면 벼락이라도 맞은 걸까, 나는? 아니면 온 세상의 코타로들이 내게 기적을 심어주었나? 이건 전과목 100점을 맞았을 때보다도 심장이 뛰는 소리다. 행복지수가 한계를 돌파한 기분. 나, 소리 질러도 될까.

“소리는 지르지 말고. 스킨십은 사전에 없었으니까 옆에서 걷는 걸로 만족해. 자, 그러면 어디로 갈까?”

타카스기가 나를 보고 웃는다. 매일매일 그렸던 그 웃음이 나를 향한다. 이제는 상상조차 닳아버린 그와의 데이트가 현실이 되고 있다. 어디, 어디로 가야 좋을까. 어디로 가면 좀 더 그와 함께 할 수 있을까.

아니다. 어디든 좋다. 이제 그가 옆에 있으니까. 늘 멀리에 있던 그가 이제는 내 바로 옆에 있으니까. 단 몇 시간뿐일지라도 그를 마음껏 볼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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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은후글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