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타카] 물빛정원

2017. 4. 2. 23:27 from 은혼

물빛정원


WR. 고은

긴타카 전력 60분

*캐붕주의

너는 하늘을 날아, 나는 바다를 헤엄칠 테니.

 

밝은 햇살이 하늘을 메운 날이었다. 궁 안은 분주했다. 한 무리는 겨우 내 묵은 먼지를 털어내고 바닥을 쓸고 닦았다. 또 다른 무리는 음식 재료를 날랐고, 그걸 받은 또 다른 사람들은 탁탁탁 소릴 내며 끝도 없이 음식을 만들어냈다. 어떤 무리들은 고운 비단을 메어들고 어느 방으로 속속 들어갔다. 오늘은 타카스기 신스케의 성인식이었다.

“이런 귀찮은 걸 꼭 해야 하는 거야?”

“싫으셔도 어쩔 수 없습니다, 신스케 님. 성인식은 단지 타카스기 가를 위한 일만은 아니니까요.”

타카스기는 툴툴대며 이제 막 열 번 째 옷을 벗고 열한 번 째 옷을 걸쳤다. 아무리 봐도 색만 다를 뿐, 똑같아 보였다. 삐죽 입이 나온 어린 도련님에게, 그와 가장 가까운 시종이었던 헨페이타는 정중히 말했다.

“그러시겠지. 성인으로 인정을 받고 나면 이 바다의 주인은 내가 되는 거니까.”

타카스기는 여전히 관심 없다는 얼굴로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쳐다보았다.

“그렇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드넓은 이 바다가 신스케 님 손에 있는 것이지요. 뭐, 주인이 되신다고 이전처럼 멋대로 구실 수는 없겠지만 말입니다. 이곳에 사는 생물들은 물론, 바다를 건너는 인간들까지도 신스케 님께서 보살피고 돌보게 되지요. 그러니 앞으로는 행동거지를 조심히 하고 품위와 예의를 지키셔야 할 것입니다.”

“알아, 안다고. 그 쯤 해 둬. 됐고, 그냥 아까 저걸로 하지. 피곤해.”

타카스기는 질린다는 얼굴로 헨페이타를 쏘아보았다. 그러자 헨페이타는 반짝이던 눈을 거두고 그가 고른 옷을 가지고 다른 시종들과 함께 방을 나갔다.

타카스기는 가만히 의자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았다. 아직 어린 티가 가시지 않은 피부 위로 따사로운 햇살이 내려앉았다. 그는 오늘 하루 벌어질 일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해봐야 머리만 복잡하고 또 도망가고 싶어질 테니. 하늘은 제 기분일랑 모르는 것처럼 밝고 경쾌했다. 칫. 타카스기는 눈을 감았다. 햇살만 받을 요량이었다.

똑똑-.

“들어오지마. 급한 거 아니면.”

그는 또 자기를 귀찮게 할 셈이냐며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얼레. 벌써 들어왔는뎁쇼.”

타카스기는 깜짝 놀라 눈을 떴다. 처음 듣는 목소리에, 건방진 말투였다. 그의 눈앞에는 새하얀, 정말 새하얀 생물체가 창문에 걸터앉았다. 그것은 저를 빤히 보고 있었다.

“뭐, 뭐야!”

“뭐냐니, 일단 물건 취급은 그만해줄래?”

그… 일단은 사람같이 생긴 그 놈은 생긋 웃으며 말했다. 타카스기는 당황한 눈을 거두고 그를 분명하게 쳐다보았다. 새하얗다는 건 그의 머리칼 때문이었다. 이제 보니 은빛으로 반짝이는 것도 같았다.

“누구냐. 출신과 이름을 대.”

타카스기는 잔뜩 경계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상대방은 여전히 여유있는 얼굴로 응했다.

“출신…. 그런 건 나도 모르겠고, 타카스기 군은 이 때에도 작았구나?”

“뭐야?! 말 다했냐? 내가 누구라고 감히 함부로 입을 놀려. 영영 그 입 못 떼게 해주랴?”

그 사내의 도발에, 타카스기는 벌떡 일어나 그에게 삿대질을 했다.

“말투하며 손버릇하며. 꼭 그대로 자랐네, 타카스기.”

구겨지는 타카스기의 얼굴과는 다르게 상대방은 이제 누군가를 떠올리며 감상에 젖은 듯한 목소리였다. 이 곳에서 자신에게 저리도 무례하게 군 자가 없었다. 저리 뻔뻔하게 방에 쳐들어와 헛소리를 내뱉는 자도 없었다. 타카스기는 당장이라도 힘을 사용할 것처럼 자세를 틀었다. 그러나 은빛 머리칼을 가진 그 남자는 창틀에서 내려와 별안간, 타카스기를 품에 안았다.

“보고싶었다고, 타카스기.”

타카스기는 그의 품 안에 가득 찼다. 그는 갑작스런 상황에 당황하며 그를 밀쳐내려고 했다. 그럴수록 상대의 팔은 더욱 저를 감싸 안았다.

“정말, 보고싶었어.”

등 뒤로 울리는 낮은 음성에, 타카스기는 팔을 거두었다. 잠자코 안겨있자니, 그의 향기가 들뜬 가슴을 침착하게 만들었다.

“타카스기. 타카스기.”

그 사내는 푹 파고드는 목소리로 타카스기를 불렀다. 자주 불러본 듯 익숙하고 따스했다.

“어이, 너. 내 이름은 어떻게 아는 거냐고….”

타카스기는 괜시리 얼굴이 붉어졌다. 그가 부르는 제 이름이 그리 설렌 적은 처음이었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설레어하다니, 그것만큼 창피할 일도 없다고 그는 생각했다.

“모를 리가. 너를 모르고 살 리가. 온 생이 너였다고, 나는.”

얼마나 껴안고 있었을까, 타카스기의 방문 너머로 인기척이 들렸다.

“신스케님. 이제 옷을 입으셔야 합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곧 헨페이타의 목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 타카스기는 움찔했다. 사내는 품에서 타카스기를 떼어내었다.

“사람이 왔군.”

그는 허리를 숙여 그와 눈을 맞추었다.

“다음에 다시 봐. 다음에는 네가 날 먼저 찾아. 알겠지?”

“그치만…. 나는 당신 이름도 모른다고.”

“쳇, 이름도 기억 못하는 바보스기.”

“뭐야?!”

타카스기는 그를 째려보았다. 그러자 상대방은 처음 보여준 그 웃음으로 타카스기를 쳐다보았다.

“사카타 긴토키다. 이번에는 꼭 기억해. 이번 생은 꼭 기억해서 나를 찾아.”

그는 그리 말하더니 창문을 열었다. 그리고는 그대로 나가버렸다.

“뭐야…. 에, 근데 여기 꽤 높은데?”

타카스기는 재빨리 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땅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얀 날개가 보였다. 그것은 크게 펄럭이더니 먼 곳으로 날아가버렸다.

“사카타 긴토키? 저런 날개는 본 적이 없는데…. 어느 종족이야. 그것보다 날 어떻게 알고….”

“신스케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그가 생각에 채 잠기기도 전에 헨페이타의 목소리가 한 번 더 들렸다. 타카스기는 알겠다며 대답했다. 문이 열리고 또 여럿이 방으로 들어왔다. 분주한 사람들 틈에서 그는 방금 그 일이 내내 맴돌았다. 사카타 긴토키라는 이름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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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이름은 누가 지었습니까?

WR. 고은

 은혼 전력 60분 연성

 

 

“즈라.”

“즈라가 아니라 카츠라입니다.”

카츠라는 낭랑한 목소리로 또박또박 대답했다. 긴파치는 스윽 쳐다보더니 다시 출석부에 눈길을 대었다.

“타카스기 신스케.”

“….”

“타카스기 신스케, 대답.”

“망할 천연파마.”

타카스기는 아니꼬운 눈으로 긴파치를 쳐다보았다. 조그맣게 읊조리는 말에 옆자리에 앉은 카츠라는 타카스기의 옆구리를 찔렀다.

“선생님께 대하는 표현이 그게 뭡니까, 타카스기 군? ‘망할’ 이라는 표현은 반 평균을 훅 깎아 놓은 네 녀석한테 써야 하는 게 아닐까, 망할스기 군?”

긴파치는 동그란 안경 너머로 무심하게 타카스기를 쳐다보았다. 타카스기는 지지 않고 입 꼬리를 틀어 올렸다.

“헤에, 부장이나 교장한테 어지간히 깨졌나보네. 망할 천연파마가 일일이 대꾸도 다 해주네, 망할 파마.”

“즈라, 저 녀석에게 공부 대신 예의범절 좀 먼저 가르쳐라. 대체 어디서 배워먹은 버르장머리야? 망할스기.”

“즈라가 아니라 카츠라입니다, 선생님.”

“하아…. 대체 왜 너희 둘이 전교 꼴등이고 전교 일등이냐고. 왜 최상위하고 최하위가 같은 반에 있는 거냔 말이다. 즈라, 반장으로서 말이야. 뒤쳐지는 친구는 좀 도와주고 끌어줘야 되는 거 아니냐? 타카스기 군, 친구가 앞서면 좀 경쟁심 같은 거 안 드냔 말이야. 네 녀석 덕분에 안 해도 되는 보충 수업을 해야 하잖냐. 어떻게 책임질래?”

긴파치는 한숨을 푹 쉬며 출석부를 내려놓았다. 그는 온갖 귀찮은 얼굴을 지었다. 황금 같은 방학, 그 첫날에 학교에 다시 오게 될 줄이야. 하필이면 교장이 학교 질 향상이니 뭐니 쓸데없는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바람에 상 ․ 하위권 녀석들을 데리고 방학 보충 수업을 하게 되어 버렸다. 좋다, 이거야. 성적 상위권으로 랭크되면 지원금도 많이 받고 나도 휴가 받고 좋단 말이지. 하지만 그건 내가 담당이 아니었을 때 이야기이다.

“분명히 타츠마 놈이야. 망할 자식, 자긴 여행 간다고 날 대신 추천한 거라고.”

대체 왜 내가 이 녀석들 때문에 방학을 반납해야하느냔 말이다. 긴파치는 몇 분째 한숨만 쉬어댔다.

“선생님 자식아, 저도 나오기 싫었거든요.”

“선생님 자식은 또 무슨 말이니, 타카스기 군. 그러면 왜 나왔냐고, 집에…. 하, 아니다.”

저 중2병 단단히 든 놈만 아니었어도 덜 짜증났을 텐데, 하고 긴파치는 생각했다.

“자, 본격적으로 수업 시작하기 전에 질문 받는다. 있나? 없으면 수업 끝.”

“네?”

카츠라는 황당한 눈으로 반문했다. 그러자 긴파치는 어차피 너희도 이 여름에 나오기 싫었을 것 아니냐며 보충 수업이야 선생님 재량이니까 첫 날은 이렇게 마무리 하자는, 아주 성의없는 말투로 대답했다.

“그렇긴 하지만…. 그러면 선생님, 선생님 이름은 누가 지어주신 겁니까?”

카츠라는 조금 망설이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긴파치에게 질문을 던졌다. 타카스기는 슬쩍 카츠라를 쳐다보았다. 뭐 그런 질문을 하느냔 표정이었다. 그것은 긴파치도 마찬가지였다.

“아, 그게…. 선생님 이름이 워낙 특이하시잖아요. 쭉 여쭤보고 싶었습니다.”

카츠라는 둘의 따가운 시선을 알고 조심스레 말했다. 그러자 타카스기는 코웃음 쳤다.

“파마머리니까 긴파치 아니겠냐. 부모님이 어릴 적부터 망할 파마인 걸 알고 지으셨나보지.”

“어이, 타카스기 군. 그거 지금 개그라고 치신 겁니까? 하, 냉혈 타카스기군은 개그도 차갑네.”

“흥.”

타카스기는 긴파치를 한 번 째려보더니 고개를 돌렸다.

“글쎄, 궁금해?”

긴파치는 살짝 인상을 구기더니 카츠라를 보고는 물었다.

“네.”

“그럼 다음 시간까지 알아오도록.”

“네?”

카츠라는 다시 반문했다. 조금 놀란 얼굴이었다.

“망할 선생님, 나나 얘나 부모가 없는데요. 누구한테 물어보면 되는 겁니까.”

타카스기는 빈정대는 표정으로 말했다. 긴파치는 슬쩍 미간을 찌푸렸다.

“그럼 숙제는 선생님이 해 오셔야겠군요. 다음 시간까지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럼, 이만.”

카츠라는 다다다, 문자를 뱉어냈다. 살짝 기세등등한 표정도 실려 있었다. 그러더니 그는 가방을 싸고 경례를 했다. 긴파치가 뭐라고 붙잡기도 전에 그는 교실을 나가버렸다. 타카스기도 어깨를 으쓱하더니 그를 따라 나갔다.

“일등이나 꼴등이나…. 누가 친구 아니랄까봐 저런 건 똑같네, 흥.”

긴파치는 중얼거렸다.

“근데 나도 물어볼 사람이 없다고, 요 녀석들아.”

이름이라…. 글쎄, 누가, 왜 이렇게 지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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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타카/동급생] 담아내기

2017. 1. 22. 23:21 from 은혼

 

 

 

담아내기

WR. 고은

 

 

 

자꾸만 거슬리는 게 있다.

“뭐냐. 자꾸 그렇게 멍 때리면 멍청한 얼굴 더 멍청해 보인다?”

타카스기는 이쪽을 돌아보며 가운뎃손가락을 흔들어보였다.

“헤, 그거 다 세운거야? 어째 손가락도 짧으신 것 같네요, 타카스기 군?”

이 희고 가는 손이 요새 계속 눈이 간다.

 

고등학교의 마지막 4월이 된 날, 기분 좋은 마지막 학년을 보내보자며 나는 교실 문을 열었다. 그리고 정말 기분이 좋지 않게도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사람은 같은 반이 되고 싶지 않은 놈이었다. 타카스기 자식하곤 중학교 때 처음 만났지만 녀석과 같은 반을 했던 해에는 꼭 싸움이 났다. 그러면 그 다음 일 년을 서로가 남인 것처럼 보냈다. 딱히 그와 잘 지내고 싶은 생각은 없었으나 그렇다고 일부러 불편한 관계를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으려나? 뭐, 나는 사양이다. 가까운 듯 무심한 듯, 딱 그 정도의 적당한 거리가 좋았다. 그와 내 사이에서는. 그랬기 때문에 새 학기에 같은 반이 됐음에도 적당하게 그를 대하며 더 가까이 가려 하지 않았다.

문제는 중간고사가 끝난 후였다. 담임은 이제 슬슬 자리를 바꾸고 수험에 집중해야 되지 않겠냐며 성적대로 자리를 배치하기 시작했다. 그는 공부 못하는 놈 옆에는 잘하는 놈을 붙이겠다며 으름장까지 놓았다. 누구랑 앉든 상관은 없지만 말이지. 일단 짐을 옮겨야 하는 게 귀찮지 않냐고, 선생님. 움직이기 싫은 몸을 기어이 끌고 일어나 담임이 정해준 자리에 앉았다. 누가 또 짝이 되려나, 재밌지도 않은 호기심을 품고 반 아이들이 차례로 들어오는 것을 바라보았다. 여러 아이들이 내 옆을 스쳐가고 잠깐 든 호기심마저 스러질 때였다.

“아아?”

“닥쳐. 내가 더 별로니까.”

타카스기가 내 옆자리에 앉으며 잘근잘근 욕을 날렸다. 선생님? 저 왜 타카스기 군하고 앉아야 하는 거죠? 타카스기 군은 너무 똑똑해서 긴상은 짝꿍조차 될 수 없는 위치인 것 같은데요. 그러나 내 말에 돌아오는 건 아이들에게 공개된 나의 등수와 그의 등수였다. 더는 엮이기 싫었는데 말이지. 최대한 조용히 있어야하나.

날이 더워지고 우리 모두 하복으로 갈아입은 채 학교를 메웠던 그 즈음부터였을까. 문득 돌아본 그의 손이 예뻐 보였다. 핏줄이 울긋불긋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예쁜 언니들처럼 가냘프고 섹시하지도 않은데 자꾸 눈길이 갔다. 너무 대놓고 보는 날에는 그도 신경이 쓰였는지 변태같이 쳐다보지 말라며 제 손을 감추었다. 그러면 조금은 겁이 나는 것이었다. 정말 내가 변탠가. 몇 년 동안 쳐다도 안 보던 건데…. 이 놈 손에 관심을 두느니 잡지에 나오는 언니들 몸매가 몇 배는 더 관심 둘 가치가 있는 거라고! 스스로 별별 이유를 다 댔지만 정작 돌아가는 눈은 막을 수 없었다.

 

곱게 손가락을 접어 주먹 쥔 손을 내 손아귀에 꽉 붙잡으니 그는 불쾌한 듯 인상을 찡그렸다.

“이거 봐. 내 손 안에 다 들어간다고? 얼마나 작은 거야, 타카스기 군은.”

손 안에 가득 찬 그의 손을 흔들어보이자 타카스기는 잔뜩 이를 갈며 주먹을 비틀어댔다. 그가 있는 힘껏 손을 빼버리자 탁, 하는 소리가 났다. 제 손을 감추며 그는 먼저 앞으로 가버렸다.

손, 잡아보고 싶다. 이렇게 억지로가 아니라 정말 한 번이라도 따뜻하게 잡아보고 싶다. 살짝 깍지 끼면, 그런 나를 거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걸 말할 순 없다. 티를 낼 수도 없어. 여기서 더 멀어지고 싶진 않아. 또 남처럼 굴고 싶진 않아. 결국은 또 친한 척을 하며 그를 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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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타카/19금] 별천지

2017. 1. 21. 0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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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보로] 날개

2017. 1. 14. 00:32 from 은혼
       


                                                       오보로 이야기 - 날개

                                                                                                                    WR. 고은


"어?"

긴토키, 타카스기, 쇼요와 함께 길을 걷던 카츠라는 무언가를 보더니 그리로 뛰어갔다. 그의 등 뒤로 카츠라의 이름을 불렀으나 그는 대답도 않고 어느 부근에서 쪼그려앉았다.

"뭐지?"

카츠라의 호기심은 늘 다른 둘을 궁금하게 했다. 긴토키와 타카스기는 얼른 그에게 다가갔다.

카츠라가 보고 있던 것은 작은 새였다. 새 주위에는 검붉은 피가 스며있었다. 핏자국을 따라가보니 새의 날개가 꺾여있는 것 같았다. 바닥에 늘어진 채로 그 작은 새는 날개만 간간히 퍼덕였다.

"선생님, 어떡하죠?"

어느 새 그들 뒤에는 쇼요가 서 있었다. 카츠라는 걱정스레 그를 올려다보았다.

"글쎄요, 어떡하죠?"

쇼요는 그와 눈을 마주치자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병원에라도 가야 하는 거 아냐?"

"바보야, 이런 시골에 병원이 어딨냐."

타카스기가 말하자 긴토키가 말을 가로채었다. 그러면 그냥 두고 갈거냐고 반문하자 긴토키는 별 수가 생각나지 않는지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일단은 피 좀 멈추게 하자. 이러다 죽겠어."

카츠라는 제 옷을 조금 찢어 새의 날개를 감쌌다. 어설프지만 얼추 지혈을 한 모양새가 되자, 그는 새를 손에 감싸들고 쇼요를 바라보았다.

"선생님..."

"네?"

쇼요는 여전히 모르는 척, 아이들의 대답을 기다렸다.

"도와주세요, 선생님."

"아직 할 줄 모른다구요, 날개 고치는 거. 멋대로 손 댔다가 되려 못 날게 되면 어떡해요."

카츠라의 시선 옆으로 타카스기와 긴토키의 눈빛이 간절하게 쇼요를 향했다. 그제야 쇼요는 알겠다며 여전히 떨고 있는 새를 받아들었다.

"며칠동안 지켜보죠. 회복하고 나면 괜찮아질거에요."

그 때 쇼요는 그렇게 말했다. 그러면 그제야 안심한 듯한 세 아이가, 쇼요를 바라보았다. 쇼요는 그들을 마주보며 생긋 웃었다. 본 적 없던, 진심으로 웃는 얼굴이었다.

그들 사이에 얼마나 깊은 유대가 쌓였을까. 언제부터 쌓여왔을까. 날개가 부러진 그 새를 구하면서부터였을까. 아니, 분명 그 전부터였을터다. 서로를 보는 눈빛이 아직까지 눈에 아른거리는 걸 보면 말이다. 내가 그 유대를 그리워한만큼이나 쌓여있었겠지.

부러진 그 검으론 하늘에 닿을 수 없다, 나는 너희들에게 그리 말했다. 그러나 닿을 수 없었던 건 나였다. 쇼요, 아니 우츠로일까. 당신에게 닿으려 펼친 이 날개는 어느 샌가 부러져 있었다. 날개짓을 할 수록 아팠던 건 나도 모르게 꺾인 그것 때문이었겠지.

당신들이 구해줬던 그 새처럼, 나도 구원받을 수 있을까. 나도 당신에게서, 회복하면 괜찮아질거라는 말을 들을 수 있을까. 나도 안심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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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사카츠라 요소가 있습니다.

 

*야토족 치비 타카스기 신스케와 세 남자가 동거하는 이야기입니다.

 

 

 

WR. 고은

 

 

“아?”

꼭 감긴 두 눈. 눈이 아플 만큼 새하얀 피부. 그것을 집어삼킬듯 진한 검보랏빛 머리. 그리고 그 사이로 새어나오는 작은 숨소리.

“즈라, 이거 뭐냐?”

긴토키는 집에 돌아와 씻고 누울 생각만 가득 품으며 방문을 열었다. 그러나 그의 소중한 보금자리이자 하나뿐인 휴식처를 떡하니 차지한 것은,

“즈라가 아니라 카츠라다! 이거가 아니라 애이지 않나.”

즈라, 아니 카츠라 말대로 어린 아이였다.

“애인건 나도 안다고? 어디서 주워왔냐는 말이야.”

“아. 그 애? 나와 즈라가 발견했으이. 아주 피떡이 되어있더구먼.”

카츠라의 어깨 너머로 사카모토가 고갤 내밀었다.

“하아? 대체 어디서? 그것보다도, 병원으로 데려가면 되잖아. 왜 내 방에 들이는 건데?”

“에… 그게…. 새벽이었기도 하고 당황해서….”

“새벽? 그러니까, 그 새벽에 어딜 간 거냐고.”

“그거야 당연히 러브 호텔이제. 새삼스럽, 읏!”

뭘 그런 걸 물어보냐는 듯 타츠마는 대꾸했다. 그러나 말을 더 뱉으려는 찰나, 옆에 있던 카츠라는 얼른 그의 발을 밟았다. 타츠마는 아픔에 발을 꼬며 카츠라를 쳐다보았다. 그는 화악 얼굴이 붉어져 있었다. 제 앞의 둘을 보며 긴토키는 이마를 짚었다.

“아아, 긴토키 그게 말이야….”

“킨토키! 아주 나쁜 상황은 아니었네. 그러니까….”

“바보들 말 같은 건 들을 필요도 없걸랑? 그래서, 얘 어떻게 할 거냐고!”

“으응….”

사카모토의 목소리가 커지자 긴토키의 언성도 따라서 높아졌다. 그 바람에 아이가 잠에서 깬 듯 몸을 뒤척였다. 꼬물거리는 움직임을 본 셋은 일제히 소릴 죽였다. 아이는 천천히 눈을 떴다.

“으으…. 뜨거워, 햇빛….”

그러나 그는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햇빛에 질끈 눈을 감았다. 꼭 그것을 피하려는 것처럼 몸을 뒤척이기도 했다. 긴토키는 햇빛이란 말에 고갤 갸웃거리더니 곧 무언가 생각난 듯 얼른 커튼을 쳤다. 그러자 아이는 잠잠해졌다. 그는 다시 눈을 뜨며 몸을 일으켰다. 그가 고갤 들자 제 앞에 서 있는 세 바보의 시선이 와락 쏟아졌다.

“아저씨들은 누구야?”

“뭐야? 아저씨?!”

“아저씨가 아니라 카츠라다!”

“아하하핫! 꼬마, 일어나자마자 하는 소리가 그거여?”

“…저 아저씬 너무 시끄러워. 그 옆에 있는 건 애인? 똑같이 시끄러워.”

아이는 사카모토와 카츠라를 가리키더니 듣기 싫은 표정을 하며 귀를 후볐다.

“어이, 꼬마. 그건 어느 나라에서 배워먹은 예의냐? 아주 글러먹었구만.”

긴토키는 허릴 숙여 아이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그러자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크고 투명한 눈 속에 제 모습이 미치는 듯 했다.

“못생겼어.”

“아?”

긴토키는 순간 잘못 들었나 싶어 눈을 치켜떴다. 그러자 아이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다시 말해주었다.

“못생겼어.

“뭐야? 긴상의 어디가? 어딜 봐도 빼놓을 곳 없이 완벽하다고!”

“헤에? 아저씬 거울도 안보고 사나보네? 그게 아니면 거울 청소는 하는 거야?”

아이가 눈을 살짝 내리깔며 그래, 마치 비웃는 듯한 말투로 말하자 긴토키는 제대로 찔린 듯 했다. 그는 아직 *추에 피도 안 마른 게 어디서 그런 말은 다 배워왔냐, 그런 말 한다고 긴상의 잘생김이 무너질 것 같냐며 눈을 뒤집어댔다.

“어이, 긴토키. 그만 하게.”

보다 못한 카츠라가 그를 아이에게서 떼어놓으며 저지했다.

“그래, 바보아저씨야.”

그러면 아이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톡, 던졌다.

“뭐야?! 요새 애들 무섭네. 어른한테 못하는 말이 없어요!”

긴토키는 더욱 험한 표정을 지었다. 아이도 지지 않고 눈을 흘기며 긴토키를 노려보았다. 그런데 그 때,

‘꼬르륵.’

“…나 배고파.”

그들 사이를 비집고 나온 소리와 동시에 아이는 배를 움켜쥐었다. 그러더니 고개를 푹 떨구어버렸다.

“얼레, 이건 또 무슨 뜬금없는 전개야.”

“밥 줘. 나 며칠 동안 아무것도 못 먹었어.”

“아? 누가 네 놈한테 줄 밥은 있다냐? 됐고, 정신 차렸으면 나가.”

“킨토키, 너무한 거 아닌감! 아직 상처도 다 안 나았다고?”

“그래. 계속 굶었다는데 불쌍하지도 않나! 이런 감정 없는 놈.”

“감정이 없는 게 아니라 아이는 강하게 키워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긴상은. 죽을 듯 굶어봐야 소중한 게 생기는 법이거든.”

“아아, 배고파….”

아이는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그들의 대화를 갈랐다. 그리고 그 말을 끝으로 쓰러져버렸다.

“아?! 어이, 꼬마! 정신 차려!”

“긴토키! 자넨 일단 물을 가져 오게. 그리고 나와 사카모토는 식을 차리겠네. 어서!”

아이를 걱정스레 쳐다보더니 카츠라와 사카모토는 먼저 방을 나섰다. 그들을 따라 긴토키도 나가려할 때였다.

“큭.”

뒤에서 들리는 웃음에 긴토키는 멈칫했다. 설마하며 뒤를 돌아보면, 이쪽을 보며 입꼬릴 비틀며 웃는 아이가 있었다.

“뭐야, 쓰러진 거 아니었어?”

“바보 같긴.”

“이 놈이…. 어디서 이런 못된 것만 배워왔냐, 앙?”

“놈 아니야.”

“뭐야?”

“타카스기 신스케야.”

뜬금없는 타이밍에 자기소개라니. 긴토키는 순간 대응할 말을 잊어버려서는 어, 아니, 아, 응 따위의 대답을 내놓았다.

“어느 쪽이라는 거야.”

“됐고. 너, 야토족이냐?”

긴토키는 쪼그려 앉아 그에게 시선을 들어올렸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타카스기의 눈빛이 일렁였다.

“새하얀 피부에 햇빛에 약한 타입. 어째서 야토족이 여기에 있어? 우주 최강이라는 종족이 왜 피를 흘리면서 이 지구에, 그것도 하필 러브호텔가에 쓰러져 있는 거냐고.”

“이것저것 궁금한 게 많구나, 아저씨는. 도망쳤어, 저 멀리에서.”

타카스기는 천장을 가리켰다. 천장에서 도망쳤단 말은 아닐 터다. 그러면 대체 어디서 왔다는 말인가. 긴토키는 다시 한 번 물었다.

“도망쳤다니, 어디서?”

“그건 알 거 없어. 그리고 내가 거기에서 쓰러지고 싶어서 쓰러진 거 아냐.”

타카스기는 말을 하면서 표정을 씰룩였다. 꼭 분해하는 얼굴이었다.

“이름도 알았고 왜 지구에 있는지도 알았으니까 이제 나 밥 줘. 진짜로 배고프단 말야.”

“쳇, 사근사근한 구석이라곤 하나도 없는 꼬마로구만. 일단은 카츠라가 부탁한 거니까. 알겠냐? 절대로 너 같은 녀석을 위해서 주는 게 아니라고.”

“흥.”

“그렇게 나오면 줄까보냐!”

“긴토키! 뭐 하는 겐가! 어서 물이라도 떠 주게. 아예 죽일 작정인가!”

긴토키가 타카스기에게 달려들 모습으로 목소릴 높이자 등 너머로 카츠라가 소리쳤다.

“이 녀석은 이런 걸로 안 죽어. 야토….”

그 때, 타카스기가 그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그러더니 입술에 손가락을 대는 것이었다.

“말하지 마. 말했잖아, 도망쳤다고.”

타카스기는 조그맣게, 그러나 분명하게 속삭였다. 긴토키는 잠시 미간을 찌푸리더니 그의 팔을 떼어냈다.

“알겠다고, 귀찮은 꼬마. 기다려, 물 가져올게.”

“꼬마 아니라니까.”

“아아, 알겠습니다요. 신스케 공.”

긴토키는 타카스기를 두고 방을 나왔다. 그 뒤에서 타카스기는 빙글, 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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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은후글쓴다 :

[타카히지] 꽃반지

2016. 8. 9. 23:53 from 은혼





꽃반지

WR. 고은




아까부터 토시로가 보이지 않는다. 벌써 오후가 다 지나고 있는데, 밖에 놀러나간다던 녀석이 돌아오지 않는 것이다. 깜빡 잠든 사이 돌아왔나 싶어 집 여기저기를 둘러보아도 그의 모습은 없었다.

 

“…기어이 발걸음을 하게 만드는 꼬마.”

 

타카스기는 중얼거리며 현관을 나섰다. 해질녘인데도 태양이 마지막 남은 열을 내뿜는 것 마냥 뜨거웠다.

 

 

해가 지고, 어슴푸레한 하늘이 떴다. 여전히 타카스기는 히지카타를 찾고 있었고, 여전히 히지카타는 찾지 못했다. 그는 이제 불안한 생각마저 들기 시작했다. 어두울 때까지 못 찾았다는 것은, 납치라도 된 것인가. 그는 발놀림을 재촉하듯 빠르게 걸었다.

 

그가 다다른 곳은 한 공원이었다. 그 곳에서 어떤 까만 형체가 땅에 쭈그려 앉아 있었다. 그는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아, 찾았다.

 

“어이, 토시로.”

“응?”

 

히지카타는 고개를 들었다. 시간이 흐르는 줄도 몰랐던 듯, 그는 그제야 주변을 둘러보았다.

 

“…언제부터 있었던 거냐.”

“아까부터! 근데 마음에 드는 게 없네.”

“뭘?”

“아아, 잠깐만!”

 

그러더니, 히지카타는 토끼걸음으로 자릴 옮겨 또 풀숲을 뒤적이는 것이다. 타카스기는 조용히 뒤에서 그것을 지켜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히지카타는 밝은 표정을 지으며 그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일어나려고 하는데,

 

“우앗!”

 

그는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넘어지고 말았다. 타카스기는 표정을 찡그리며 그를 일으켜세웠다.

 

“일어나기 힘드냐.”

“조금…”

“하아. 일단 업혀라.”

 

그러더니 그는 무릎을 굽히고 제 등을 히지카타에게 내어보였다. 히지카타는 천천히 그 등에 올라탔다. 타카스기는 그를 제대로 업은걸 확인한 후 일어나서 걸음을 떼었다.

 

“하루종일 밖에 나가서 돌아오지도 않아, 걱정만 시키더니 결국 제 다리도 못 쓰게 됐군.”

“그런 거 아니야.”

“그런 거 아니라고?”

“응, 이거 선물이야.”

 

그러더니, 히지카타는 타카스기 얼굴 옆으로 꽃반지를 내밀었다.

 

“이게 뭐냐.”

“선물! 오늘 타카스기 생일이잖아?”

 

히지카타가 해맑게 웃었다. 그의 웃음에 베인 온기가, 타카스기의 귀를 타고, 뺨을 타고 흘렀다.

 

“어떻게 알았나.”

“비-밀.”

“웃기지도 않는군.”

 

하지만 히지카타는 입꼬리가 올라간 타카스기의 옆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생일축하해, 타카스기.”

“…그래.”

“그래, 가 뭐야. 너무 미지근하다고.”

“그러면?”

“고마워!”

“나더러 하라는 말이냐.”

“응.”

“…쳇, 귀찮은 꼬마.”

“해줘.”

 

그는 조심스레 히지카타의 선물을 받아들었다. 그러더니 그가 보이지 않게, 손가락을 움직여 제 손에 끼워 넣었다. 그 반지가 흐트러지지 않게, 그는 손을 꼭 쥐었다.

 

“알겠다. 고마워.”

 

그 한마디에, 히지카타는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활짝 웃었다. 그 웃음에, 타카스기도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달빛이 거릴 비추고, 그들을 비추며 긴 그림자가 그들 뒤를 드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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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모를 선물 하나

WR. 고은




“어이, 타카스기. 잠깐 나와 봐.”

 

한창 잔치가 벌어지는 와중, 긴토키가 타카스기를 툭툭치며 말했다. 조금 술에 취한 타카스기는 살짝 미소를 걸친 채 뭐냐는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긴토키는 그를 슬쩍 잡아끌더니, 주위에 ‘아아, 타카스기군이 조금 취한 것 같아서-’ 라고 둘러대고는 밖으로 데려갔다.

 

“헤에, 뭐냐.”

 

취기로 붉어진 볼이 꽤나 타카스기를 귀엽게 만들었다. 긴토키는 평소답지 않게 풀어진 그의 모습을 보며 안고 싶기도 했고, 불안하기도 했다.

 

“에, 저, 그 뭐냐. 할 말이 있어서 말이지.”

“그니까. 뜸 들일 거면 들어간다.”

 

타카스기가 뒤돌자마자 발걸음을 떼는 걸 보고, 긴토키는 다급하게 그의 팔을 잡았다.

 

“어이! 가는 게 너무 빠르다고?! 그러니까 말야.”

“빨리 말해.”

“하여튼, 타카스기는 성질도 급해. 기다려 봐.”

“대체 뭘 기다리라는 거냐?”

 

긴토키는 저를 올려다보며 묻는 타카스기를 피하며 불이 켜진 방 안을 힐끗힐끗 쳐다보았다.

 

“…너, 무슨 꿍꿍이야?”

“꿍, 꿍꿍이라니? 그런 거 전혀 없는뎁쇼?”

“그러면 왜 끌고 나와선 아무런 말이 없어?”

“그, 그게…”

“네 놈이 그저 또 내 흥을 깨려고 했나보군. 됐다, 들어간다.”

“어이, 타카스기!”

 

긴토키에게 붙잡힌 팔을, 뭐 묻은걸 터는 것 마냥 한번 탁, 빼더니 그대로 멀어지는 타카스기였다. 긴토키는 머릴 긁적이며 얼른 그의 뒤로 쫒아갔다. 그리고 그를 그대로 껴안았다.

 

“…아?”

“가지 말라고. 이거, 해주고 싶었으니까.”

“이거 놔라, 변태.”

“에엑, 변태?! 누가?!”

“너지, 누구겠냐. 놔라. 좋은 말로 할 때.”

“그치만, 생일이니까….”

“하? 그럼 이게 생일 선물이냐?”

 

그 말에, 긴토키는 고갤 끄덕였다. 그 바람에 둘의 볼이 맞닿아 쓸렸다 떨어졌다. 순간 놀란 타카스기는 그의 팔을 풀어내고 두 발짝, 그에게서 멀어졌다.

 

“이상한 걸로 사람 놀라게 하지 마, 변태. 내게서 떨어져.”

“에에? 타카스기군, 그러면 섭섭하다고? 생일 선물로 이정도는 돼야지, 암.”

“너하고 내가 사귀기라도 하면 모를까, 변태자식. 말 걸지 마라.”

 

그 때, 방 안에서 나던 불빛이 꺼졌다. 순간, 밝았던 그들 둔영에는 달빛만이 빛을 내었다. 긴토키는 그것을 먼저 알아차렸다.

 

“아? 무슨 일이지? 일단 들어가자, 타카스기.”

“어? 어.”

 

둘은 얼른 움직였다. 곧, 방문 앞에 선 둘은 한번 심호흡을 하더니 방문을 열었다.

 

“생일 축하드립니다, 신스케님!”

“생일 축하하네, 타카스기.”

“와하핫. 생일 축하하는구먼, 신스케.”

 

펑엉, 펑. 폭죽 터지는 소리와 함께 방에 불이 켜졌다. 그러자 아까 자리에 있던 대원들이며 카츠라, 사카모토까지 모두 타카스기를 보며 웃고 있었다.

 

“이, 이게 무슨…”

“자네 생일 축하를 위한 파티라네. 승리를 자축하는 연회라는 건 명목이지.”

“진짜는 자네 생일을 축하하려 모인 걸세, 아하하핫!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자넨 나오질 않으니 말여.”

 

타카스기는 긴토키를 향해 뒤돌아보았다. 멋쩍게, 그리고 장난궂게 긴토키가 웃고 있었다. 그가 계속 노려보자, 긴토키는 작게 말했다.

 

“나는 시간을 끌겠다고 했지. 하지만 도통 할 말이 생각 안나서 말야. 그치만 그것도 분명, 선물이었다. 생일 축하해, 타카스기.”

 

타카스기는 표정을 굳히더니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자 모든 사람들이, 소란스럽게 굴던 제 입들을 다물었다. 타카스기는 화를 참는 것처럼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뜨며 말했다.

 

“고맙다.”

 

그리고 그는 천진한 웃음을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다시 축하의 건배소리와,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8월의 달이 채 차기도 전에, 그들의 축하 소리가 달의 나머지 부분을 꽉 채우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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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타카] 생일 선물

2016. 8. 9. 23:29 from 은혼





생일 선물

WR. 고은




“긴상 왔다-.”

 

긴토키가 현관문을 닫고 복도를 지나쳐 안방 문 앞으로 오기까지, 집안에서는 아무런 기척도 나지 않았다.

 

“타카스기…?”

 

그는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탁자 위에 타카스기가 엎드려 누워 있었다. 긴토키는 안으로 들어와 그의 옆에 앉았다. 조심스레 얼굴을 들여다보니, 다행히 자고 있는 것 같았다.

 

“휴.”

“뭘 그렇게 한숨을 내쉬나.”

 

타카스기에게 별일이 없음을 확인한 그는 그제야 마음을 놓았다. 긴장한 몸을 풀으려 자세를 고쳐 앉는데, 살짝 눈을 뜬 타카스기가 그를 보고 있었다.

 

“아이고, 긴상 놀랬잖냐.”

“어디에 놀랐다는 거야. 언제 왔나.”

“방금 왔다. 많이 피곤했냐?”

“어어, 그냥.”

 

여전히 엎드린 채 졸린 눈으로 자신을 보는 타카스기의 머리를, 긴토키는 다정한 손길로 쓰다듬었다. 타카스기는 그것이 기분 좋은 듯 입가에 미소를 띄웠다.

 

“타카스기, 잠깐만.”

 

긴토키는 그렇게 말하더니 쓰다듬던 손을 타카스기의 어깨로 내려 제 팔에 감쌌다. 그러더니 다른 한 손으로 그를 제게로 끌어당겼다. 부드럽고 천천히, 저를 끌어안는 긴토키의 품이 단단했다. 타카스기는 아무 말 없이 그대로 안겼다.

 

“호오? 웬일로 별 저항이 없으십니다, 타카스기군?”

“해주기라도 바라는 거냐.”

“아니요-.”

 

그러더니 긴토키는 타카스기의 이마 위에 입을 맞추었다. 갑작스런 입맞춤에 타카스기는 움찔했다.

 

“어이, 오늘따라 왜 그러는 거냐. 피곤하다. 오늘은 안 돼.”

“에엑? 뭐가 안 된다는 겁니까? 긴상은 전혀 생각도 안했어요, 요 녀석아.”

“그럼 뭐야.”

 

저를 올려다보며 묻는 타카스기에, 긴토키는 무어라 말을 하려다 그대로 멈추어버렸다.

 

“음? 파리 들어간다.”

 

입도 다물지 않고 저를 바라보는 긴토키에게, 타카스기는 실없는 말을 하며 살짝 웃었다. 그 모습에 긴토키는 조용히 입을 다물며 그를 품에 꼭 안았다.

 

“사랑해, 타카스기.”

“…진짜 왜 그러냐, 너.”

“생일, 축하해.”

“…아,”

“몰랐었지? 또 까먹은 거지? 그럴 줄 알았어. 타카스기군을 챙겨주는 건 긴상 뿐이지?”

“하, 웃기는 소리. 챙길 필요가 없으니까 챙기지 않은 거다.”

“챙길 필요, 있어. 네가 태어났으니까. 오늘이 없었으면, 너도 없었을 거다. 그러면 널 사랑하는 나 또한 없어. 어떤 날 보다도, 네가 태어난 날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날일 거다.”

“…”

“다만, 생일인데도 선물도, 맛있는 밥도 못해줘서. 못나게도 이렇게 안아주는 것 밖에는 할 수 없어서. 그런 변변치 못한 놈이 네 애인이라서…”

 

말끝을 흐리는 긴토키로부터 살짝 몸을 뗀 타카스기는 다시금 그를 올려다 보았다. 그의 눈이 가득 담겼다.

 

“정정해야겠군. 이제부터 생일이라는 거, 챙겨야겠어. 네가 옆에 있을 동안은 말이다. 날 사랑하는 네가 없다면 내가 태어난 이유 따윈, 더 이상 중요하지 않으니. 생일 선물 같은 거, 필요 없다. 너만 있으면 되니까.”

“예쁘게 말도 잘하는걸, 타카스기군? 오냐, 이제부터 네가 죽고 내가 죽을 때까지 꼭 같이 생일, 맞이하자. 평생 옆에 있을 거니까.”

“…고맙다, 긴토키.”

“고맙긴. 나와 함께 있어줘서 내가 고맙다.”

 

타카스기는 긴토키의 품에 파고들었다. 그러자 나지막이 울리는 심장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가 너무도 따뜻하고 편안해서, 타카스기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등 위로, 저를 토닥이는 긴토키의 손길이 느껴졌다.

 

 

“생일 축하해, 타카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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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천사님.

WR. 고은

천사님 두 분께.

 

 

 

 

 

“엄마, 나도 저거 갖고 싶어.”

“응? 저게 갖고 싶어요?”

“네!”

 

아이의 말에 엄마는 손을 잡고 가게에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해맑게 웃으며 가게를 나서는 두 사람이, 긴토키의 옆을 스쳐지나갔다.

 

 

“엄마 최고!”

 

귀를 찌르는 목소리에 긴토키는 뒤를 돌아보았다. 아이가 아직 가격표도 안 뗀 인형을 품에 꼭 안은 채 제 엄마에게 엄지손가락을 추켜올리는 모습이 보였다. 이윽고 그들이 떠나자, 거리엔 긴토키 혼자 남았다. 그러나 그는 그들이 사라진 자리에 뭐라도 있는 것처럼 멍하니 서 있었다.

 

“…아, 파르페 먹고 싶다.”

 

그는 천천히 고갤 돌리더니, 다시 발걸음을 떼었다.

 

 

 

*

 

 

 

“나가. 꼴도 보기 싫다!”

 

타카스기는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았다. 얼마나 모질게 맞았으면, 입술이 다 터졌다. 말소리가 끝나기 무섭게, 마당에 쓰러진 그를 두고 방문은 거세게 닫혔다. 탁, 하는 소리가 그의 가슴 속을 빙빙 울렸다.

 

“….”

 

어느 새 바닥에 노을빛이 깔렸다. 멀찍이 떨어져 쑥덕이던 하인들도 떠나고, 여전히 분을 삭이지 못하던 아버지의 목소리도 사그라들었다. 그제야 타카스기는 정신을 차린 것처럼 고개를 들었다.

 

그는 천천히 일어났다. 여전히 아무런 말도, 표정도 없었다. 그는 옷을 탁탁 털어내더니, 망설임 없이 대문 밖을 나섰다.

 

 

 

*

 

 

 

언제 해가 져버린 건지, 주위는 온통 검푸르렀다. 타카스기는 제가 떠나 온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음울하기 짝이 없는 저 하늘이 저 마을을 물들였나보다. 애정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곳이니 그러고도 남았다. 무정한 공허가 그의 속을 파고들었다.

 

그는 자리에 털썩 앉더니, 풀밭 위로 누웠다. 보이는 건 푸르뎅뎅한 하늘이 반, 무성한 이파리들이 반. 저리 많은 이파리를 나게 할 수 있는 건 제 옆에 우뚝 선 저 커다란 벚나무뿐이리라.

 

지난 번 하인이 얘기해준걸 떠올려보면 그것은 제 나이보다도 오래된 나무였다. 한창 벚꽃이 만개할 때였다. 왜 이렇게 예쁘게 피는데 아무도 찾질 않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이 언덕을 오기에는 험하기도 하고, 꽁꽁 숨겨져 있어서 아무도 찾지 않는다고 한 것이 기억이 났다. ‘아무도 찾지 않는다.’ 라. 그 말을 곱씹을 때였다.

 

 

“어이, 꼬마.”

 

나무에서 웬 목소리가 났다. 어림잡아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목소리 쯤 되었다. 흠칫 놀란 그는 얼른 몸을 일으켰다.

 

“누, 누구야?”

“알아서 어쩌려고?”

 

가지 사이에서 누군가가 타카스기를 놀리는 말투로 말했다.

 

“글쎄. 상관없나.”

“응?”

“몰라. 죽일거면 죽이던가.”

 

 

그러더니 타카스기는 다시 자리에 누워버리더니 눈을 감아버렸다. 그제야 나무 속 목소리의 주인은 고개를 내밀었다. 긴토키였다.

 

그는 가뿐히 나무에서 내려오더니 타카스기의 옆에 앉았다. 바스락 하는 소리와 함께, 풀썩이는 소리가 들리자 타카스기는 눈을 떠 긴토키를 바라보았다. 은색 머리가 참으로 신기했다.

 

 

“흥, 재미없는 녀석. 누가 죽인 댔냐.”“치근덕대지마, 꼬마.”

“누가 꼬만데?!”

“됐고, 볼 일 없으면 꺼져.”

“흥, 네 놈이야말로. 여기 원래 내 자리라고?”

“뭐?”

“그러니까-. 내 자리라고. 내가 계속 여기 있었으니까.”

“하, 어이가 없군.”

“여기 있으려면 자릿세 내.”

“이건 무슨….”

“너, 갈 데 없잖아.”

 

 

막무가내로 말하는 긴토키가 기가 찼던 타카스기는 고개를 돌리려고 했다. 하지만 갈 데 없다는 그 한마디에 그의 시선이 꽁꽁 묶여버렸다.

 

“보여, 네 눈에서. 나랑 똑같아.”

 

긴토키는 타카스기와 눈을 마주했다. 타카스기는 갑자기 부딪히는 시선에 얼른 고개를 돌렸다.

 

“뭐가, 뭐가 보인다는 거야. 네가 뭘 알아.”

“외롭다는 거. 네놈 두 눈에서 외로움이 흘러넘친다고?”

 

 

긴토키는 타카스기를 보며 빙글 웃었다. 동정인가, 타카스기는 실소를 터트렸다. 웃음을 거두며 고개를 돌리자, 그제야 제대로 보였다. 자신을 내려다보며 싱긋 웃는 그가, 그의 눈이. 이상했다. 꼭 자신을 보는 것 같았다. 아, 저 놈이 말했던 것이 이건가.

 

동정심 같은 게 아니었다. 그렇다고 유대감이라고 말하기엔 이제 막 처음 본 놈이었다. 그래, 그것이다. 같은 입장. 그래서 이해할 수 있던 것이다. 서로가 얼마나 닮았는지, 얼마나 외로웠는지, 얼마나 자신을 봐주길 바랬는지.

 

 

“그러니까, 자릿세는 파르페로 부탁해.”

“누가 낸댔냐? 너야말로 요구르트나 가져와. 이제부터 여긴 내 자리니까.”

“하아? 여기 원래 내 자리였다니까? 어이!”

 

타카스기는 떽떽대는 긴토키를 등진 채 돌아누워버렸다. 긴토키는 이제 막 만난 놈에게 무시를 당한 것 같다며 잔뜩 표정을 구겼다.

 

 

“…타카스기 신스케.”

“앙?”

“‘어이’ 같은 거, 아냐.”

 

옆에서 들려오는 이름에 긴토키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이름을 말할 줄은 몰랐던 눈치였다.

 

 

“어, 어엉. 사, 사카타 긴토키. 파르페 잘 부탁한다.”

“파르페 같은 소리. 요구르트 안 사올 거면 저리 가.”

 

타카스기는 제 등 뒤로 칫, 하는 소리와 함께 풀썩 눕는 기척을 느꼈다. 그는 조용히 눈을 떴다. 눈에 하나, 둘, 별이 비쳤다. 지독했던 그 하늘은 어디로 가고 투명하게 까만 하늘이 온 세상을 덮었다. 미움도, 쓸쓸함도 모두 달래주는 밤 아래가 간만에 온기로 차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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