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타카/동급생] 담아내기

2017. 1. 22. 23:21 from 은혼

 

 

 

담아내기

WR. 고은

 

 

 

자꾸만 거슬리는 게 있다.

“뭐냐. 자꾸 그렇게 멍 때리면 멍청한 얼굴 더 멍청해 보인다?”

타카스기는 이쪽을 돌아보며 가운뎃손가락을 흔들어보였다.

“헤, 그거 다 세운거야? 어째 손가락도 짧으신 것 같네요, 타카스기 군?”

이 희고 가는 손이 요새 계속 눈이 간다.

 

고등학교의 마지막 4월이 된 날, 기분 좋은 마지막 학년을 보내보자며 나는 교실 문을 열었다. 그리고 정말 기분이 좋지 않게도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사람은 같은 반이 되고 싶지 않은 놈이었다. 타카스기 자식하곤 중학교 때 처음 만났지만 녀석과 같은 반을 했던 해에는 꼭 싸움이 났다. 그러면 그 다음 일 년을 서로가 남인 것처럼 보냈다. 딱히 그와 잘 지내고 싶은 생각은 없었으나 그렇다고 일부러 불편한 관계를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으려나? 뭐, 나는 사양이다. 가까운 듯 무심한 듯, 딱 그 정도의 적당한 거리가 좋았다. 그와 내 사이에서는. 그랬기 때문에 새 학기에 같은 반이 됐음에도 적당하게 그를 대하며 더 가까이 가려 하지 않았다.

문제는 중간고사가 끝난 후였다. 담임은 이제 슬슬 자리를 바꾸고 수험에 집중해야 되지 않겠냐며 성적대로 자리를 배치하기 시작했다. 그는 공부 못하는 놈 옆에는 잘하는 놈을 붙이겠다며 으름장까지 놓았다. 누구랑 앉든 상관은 없지만 말이지. 일단 짐을 옮겨야 하는 게 귀찮지 않냐고, 선생님. 움직이기 싫은 몸을 기어이 끌고 일어나 담임이 정해준 자리에 앉았다. 누가 또 짝이 되려나, 재밌지도 않은 호기심을 품고 반 아이들이 차례로 들어오는 것을 바라보았다. 여러 아이들이 내 옆을 스쳐가고 잠깐 든 호기심마저 스러질 때였다.

“아아?”

“닥쳐. 내가 더 별로니까.”

타카스기가 내 옆자리에 앉으며 잘근잘근 욕을 날렸다. 선생님? 저 왜 타카스기 군하고 앉아야 하는 거죠? 타카스기 군은 너무 똑똑해서 긴상은 짝꿍조차 될 수 없는 위치인 것 같은데요. 그러나 내 말에 돌아오는 건 아이들에게 공개된 나의 등수와 그의 등수였다. 더는 엮이기 싫었는데 말이지. 최대한 조용히 있어야하나.

날이 더워지고 우리 모두 하복으로 갈아입은 채 학교를 메웠던 그 즈음부터였을까. 문득 돌아본 그의 손이 예뻐 보였다. 핏줄이 울긋불긋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예쁜 언니들처럼 가냘프고 섹시하지도 않은데 자꾸 눈길이 갔다. 너무 대놓고 보는 날에는 그도 신경이 쓰였는지 변태같이 쳐다보지 말라며 제 손을 감추었다. 그러면 조금은 겁이 나는 것이었다. 정말 내가 변탠가. 몇 년 동안 쳐다도 안 보던 건데…. 이 놈 손에 관심을 두느니 잡지에 나오는 언니들 몸매가 몇 배는 더 관심 둘 가치가 있는 거라고! 스스로 별별 이유를 다 댔지만 정작 돌아가는 눈은 막을 수 없었다.

 

곱게 손가락을 접어 주먹 쥔 손을 내 손아귀에 꽉 붙잡으니 그는 불쾌한 듯 인상을 찡그렸다.

“이거 봐. 내 손 안에 다 들어간다고? 얼마나 작은 거야, 타카스기 군은.”

손 안에 가득 찬 그의 손을 흔들어보이자 타카스기는 잔뜩 이를 갈며 주먹을 비틀어댔다. 그가 있는 힘껏 손을 빼버리자 탁, 하는 소리가 났다. 제 손을 감추며 그는 먼저 앞으로 가버렸다.

손, 잡아보고 싶다. 이렇게 억지로가 아니라 정말 한 번이라도 따뜻하게 잡아보고 싶다. 살짝 깍지 끼면, 그런 나를 거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걸 말할 순 없다. 티를 낼 수도 없어. 여기서 더 멀어지고 싶진 않아. 또 남처럼 굴고 싶진 않아. 결국은 또 친한 척을 하며 그를 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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