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타카] 물빛정원

2017. 4. 2. 23:27 from 은혼

물빛정원


WR. 고은

긴타카 전력 60분

*캐붕주의

너는 하늘을 날아, 나는 바다를 헤엄칠 테니.

 

밝은 햇살이 하늘을 메운 날이었다. 궁 안은 분주했다. 한 무리는 겨우 내 묵은 먼지를 털어내고 바닥을 쓸고 닦았다. 또 다른 무리는 음식 재료를 날랐고, 그걸 받은 또 다른 사람들은 탁탁탁 소릴 내며 끝도 없이 음식을 만들어냈다. 어떤 무리들은 고운 비단을 메어들고 어느 방으로 속속 들어갔다. 오늘은 타카스기 신스케의 성인식이었다.

“이런 귀찮은 걸 꼭 해야 하는 거야?”

“싫으셔도 어쩔 수 없습니다, 신스케 님. 성인식은 단지 타카스기 가를 위한 일만은 아니니까요.”

타카스기는 툴툴대며 이제 막 열 번 째 옷을 벗고 열한 번 째 옷을 걸쳤다. 아무리 봐도 색만 다를 뿐, 똑같아 보였다. 삐죽 입이 나온 어린 도련님에게, 그와 가장 가까운 시종이었던 헨페이타는 정중히 말했다.

“그러시겠지. 성인으로 인정을 받고 나면 이 바다의 주인은 내가 되는 거니까.”

타카스기는 여전히 관심 없다는 얼굴로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쳐다보았다.

“그렇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드넓은 이 바다가 신스케 님 손에 있는 것이지요. 뭐, 주인이 되신다고 이전처럼 멋대로 구실 수는 없겠지만 말입니다. 이곳에 사는 생물들은 물론, 바다를 건너는 인간들까지도 신스케 님께서 보살피고 돌보게 되지요. 그러니 앞으로는 행동거지를 조심히 하고 품위와 예의를 지키셔야 할 것입니다.”

“알아, 안다고. 그 쯤 해 둬. 됐고, 그냥 아까 저걸로 하지. 피곤해.”

타카스기는 질린다는 얼굴로 헨페이타를 쏘아보았다. 그러자 헨페이타는 반짝이던 눈을 거두고 그가 고른 옷을 가지고 다른 시종들과 함께 방을 나갔다.

타카스기는 가만히 의자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았다. 아직 어린 티가 가시지 않은 피부 위로 따사로운 햇살이 내려앉았다. 그는 오늘 하루 벌어질 일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해봐야 머리만 복잡하고 또 도망가고 싶어질 테니. 하늘은 제 기분일랑 모르는 것처럼 밝고 경쾌했다. 칫. 타카스기는 눈을 감았다. 햇살만 받을 요량이었다.

똑똑-.

“들어오지마. 급한 거 아니면.”

그는 또 자기를 귀찮게 할 셈이냐며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얼레. 벌써 들어왔는뎁쇼.”

타카스기는 깜짝 놀라 눈을 떴다. 처음 듣는 목소리에, 건방진 말투였다. 그의 눈앞에는 새하얀, 정말 새하얀 생물체가 창문에 걸터앉았다. 그것은 저를 빤히 보고 있었다.

“뭐, 뭐야!”

“뭐냐니, 일단 물건 취급은 그만해줄래?”

그… 일단은 사람같이 생긴 그 놈은 생긋 웃으며 말했다. 타카스기는 당황한 눈을 거두고 그를 분명하게 쳐다보았다. 새하얗다는 건 그의 머리칼 때문이었다. 이제 보니 은빛으로 반짝이는 것도 같았다.

“누구냐. 출신과 이름을 대.”

타카스기는 잔뜩 경계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상대방은 여전히 여유있는 얼굴로 응했다.

“출신…. 그런 건 나도 모르겠고, 타카스기 군은 이 때에도 작았구나?”

“뭐야?! 말 다했냐? 내가 누구라고 감히 함부로 입을 놀려. 영영 그 입 못 떼게 해주랴?”

그 사내의 도발에, 타카스기는 벌떡 일어나 그에게 삿대질을 했다.

“말투하며 손버릇하며. 꼭 그대로 자랐네, 타카스기.”

구겨지는 타카스기의 얼굴과는 다르게 상대방은 이제 누군가를 떠올리며 감상에 젖은 듯한 목소리였다. 이 곳에서 자신에게 저리도 무례하게 군 자가 없었다. 저리 뻔뻔하게 방에 쳐들어와 헛소리를 내뱉는 자도 없었다. 타카스기는 당장이라도 힘을 사용할 것처럼 자세를 틀었다. 그러나 은빛 머리칼을 가진 그 남자는 창틀에서 내려와 별안간, 타카스기를 품에 안았다.

“보고싶었다고, 타카스기.”

타카스기는 그의 품 안에 가득 찼다. 그는 갑작스런 상황에 당황하며 그를 밀쳐내려고 했다. 그럴수록 상대의 팔은 더욱 저를 감싸 안았다.

“정말, 보고싶었어.”

등 뒤로 울리는 낮은 음성에, 타카스기는 팔을 거두었다. 잠자코 안겨있자니, 그의 향기가 들뜬 가슴을 침착하게 만들었다.

“타카스기. 타카스기.”

그 사내는 푹 파고드는 목소리로 타카스기를 불렀다. 자주 불러본 듯 익숙하고 따스했다.

“어이, 너. 내 이름은 어떻게 아는 거냐고….”

타카스기는 괜시리 얼굴이 붉어졌다. 그가 부르는 제 이름이 그리 설렌 적은 처음이었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설레어하다니, 그것만큼 창피할 일도 없다고 그는 생각했다.

“모를 리가. 너를 모르고 살 리가. 온 생이 너였다고, 나는.”

얼마나 껴안고 있었을까, 타카스기의 방문 너머로 인기척이 들렸다.

“신스케님. 이제 옷을 입으셔야 합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곧 헨페이타의 목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 타카스기는 움찔했다. 사내는 품에서 타카스기를 떼어내었다.

“사람이 왔군.”

그는 허리를 숙여 그와 눈을 맞추었다.

“다음에 다시 봐. 다음에는 네가 날 먼저 찾아. 알겠지?”

“그치만…. 나는 당신 이름도 모른다고.”

“쳇, 이름도 기억 못하는 바보스기.”

“뭐야?!”

타카스기는 그를 째려보았다. 그러자 상대방은 처음 보여준 그 웃음으로 타카스기를 쳐다보았다.

“사카타 긴토키다. 이번에는 꼭 기억해. 이번 생은 꼭 기억해서 나를 찾아.”

그는 그리 말하더니 창문을 열었다. 그리고는 그대로 나가버렸다.

“뭐야…. 에, 근데 여기 꽤 높은데?”

타카스기는 재빨리 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땅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얀 날개가 보였다. 그것은 크게 펄럭이더니 먼 곳으로 날아가버렸다.

“사카타 긴토키? 저런 날개는 본 적이 없는데…. 어느 종족이야. 그것보다 날 어떻게 알고….”

“신스케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그가 생각에 채 잠기기도 전에 헨페이타의 목소리가 한 번 더 들렸다. 타카스기는 알겠다며 대답했다. 문이 열리고 또 여럿이 방으로 들어왔다. 분주한 사람들 틈에서 그는 방금 그 일이 내내 맴돌았다. 사카타 긴토키라는 이름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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