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천사님.

WR. 고은

천사님 두 분께.

 

 

 

 

 

“엄마, 나도 저거 갖고 싶어.”

“응? 저게 갖고 싶어요?”

“네!”

 

아이의 말에 엄마는 손을 잡고 가게에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해맑게 웃으며 가게를 나서는 두 사람이, 긴토키의 옆을 스쳐지나갔다.

 

 

“엄마 최고!”

 

귀를 찌르는 목소리에 긴토키는 뒤를 돌아보았다. 아이가 아직 가격표도 안 뗀 인형을 품에 꼭 안은 채 제 엄마에게 엄지손가락을 추켜올리는 모습이 보였다. 이윽고 그들이 떠나자, 거리엔 긴토키 혼자 남았다. 그러나 그는 그들이 사라진 자리에 뭐라도 있는 것처럼 멍하니 서 있었다.

 

“…아, 파르페 먹고 싶다.”

 

그는 천천히 고갤 돌리더니, 다시 발걸음을 떼었다.

 

 

 

*

 

 

 

“나가. 꼴도 보기 싫다!”

 

타카스기는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았다. 얼마나 모질게 맞았으면, 입술이 다 터졌다. 말소리가 끝나기 무섭게, 마당에 쓰러진 그를 두고 방문은 거세게 닫혔다. 탁, 하는 소리가 그의 가슴 속을 빙빙 울렸다.

 

“….”

 

어느 새 바닥에 노을빛이 깔렸다. 멀찍이 떨어져 쑥덕이던 하인들도 떠나고, 여전히 분을 삭이지 못하던 아버지의 목소리도 사그라들었다. 그제야 타카스기는 정신을 차린 것처럼 고개를 들었다.

 

그는 천천히 일어났다. 여전히 아무런 말도, 표정도 없었다. 그는 옷을 탁탁 털어내더니, 망설임 없이 대문 밖을 나섰다.

 

 

 

*

 

 

 

언제 해가 져버린 건지, 주위는 온통 검푸르렀다. 타카스기는 제가 떠나 온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음울하기 짝이 없는 저 하늘이 저 마을을 물들였나보다. 애정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곳이니 그러고도 남았다. 무정한 공허가 그의 속을 파고들었다.

 

그는 자리에 털썩 앉더니, 풀밭 위로 누웠다. 보이는 건 푸르뎅뎅한 하늘이 반, 무성한 이파리들이 반. 저리 많은 이파리를 나게 할 수 있는 건 제 옆에 우뚝 선 저 커다란 벚나무뿐이리라.

 

지난 번 하인이 얘기해준걸 떠올려보면 그것은 제 나이보다도 오래된 나무였다. 한창 벚꽃이 만개할 때였다. 왜 이렇게 예쁘게 피는데 아무도 찾질 않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이 언덕을 오기에는 험하기도 하고, 꽁꽁 숨겨져 있어서 아무도 찾지 않는다고 한 것이 기억이 났다. ‘아무도 찾지 않는다.’ 라. 그 말을 곱씹을 때였다.

 

 

“어이, 꼬마.”

 

나무에서 웬 목소리가 났다. 어림잡아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목소리 쯤 되었다. 흠칫 놀란 그는 얼른 몸을 일으켰다.

 

“누, 누구야?”

“알아서 어쩌려고?”

 

가지 사이에서 누군가가 타카스기를 놀리는 말투로 말했다.

 

“글쎄. 상관없나.”

“응?”

“몰라. 죽일거면 죽이던가.”

 

 

그러더니 타카스기는 다시 자리에 누워버리더니 눈을 감아버렸다. 그제야 나무 속 목소리의 주인은 고개를 내밀었다. 긴토키였다.

 

그는 가뿐히 나무에서 내려오더니 타카스기의 옆에 앉았다. 바스락 하는 소리와 함께, 풀썩이는 소리가 들리자 타카스기는 눈을 떠 긴토키를 바라보았다. 은색 머리가 참으로 신기했다.

 

 

“흥, 재미없는 녀석. 누가 죽인 댔냐.”“치근덕대지마, 꼬마.”

“누가 꼬만데?!”

“됐고, 볼 일 없으면 꺼져.”

“흥, 네 놈이야말로. 여기 원래 내 자리라고?”

“뭐?”

“그러니까-. 내 자리라고. 내가 계속 여기 있었으니까.”

“하, 어이가 없군.”

“여기 있으려면 자릿세 내.”

“이건 무슨….”

“너, 갈 데 없잖아.”

 

 

막무가내로 말하는 긴토키가 기가 찼던 타카스기는 고개를 돌리려고 했다. 하지만 갈 데 없다는 그 한마디에 그의 시선이 꽁꽁 묶여버렸다.

 

“보여, 네 눈에서. 나랑 똑같아.”

 

긴토키는 타카스기와 눈을 마주했다. 타카스기는 갑자기 부딪히는 시선에 얼른 고개를 돌렸다.

 

“뭐가, 뭐가 보인다는 거야. 네가 뭘 알아.”

“외롭다는 거. 네놈 두 눈에서 외로움이 흘러넘친다고?”

 

 

긴토키는 타카스기를 보며 빙글 웃었다. 동정인가, 타카스기는 실소를 터트렸다. 웃음을 거두며 고개를 돌리자, 그제야 제대로 보였다. 자신을 내려다보며 싱긋 웃는 그가, 그의 눈이. 이상했다. 꼭 자신을 보는 것 같았다. 아, 저 놈이 말했던 것이 이건가.

 

동정심 같은 게 아니었다. 그렇다고 유대감이라고 말하기엔 이제 막 처음 본 놈이었다. 그래, 그것이다. 같은 입장. 그래서 이해할 수 있던 것이다. 서로가 얼마나 닮았는지, 얼마나 외로웠는지, 얼마나 자신을 봐주길 바랬는지.

 

 

“그러니까, 자릿세는 파르페로 부탁해.”

“누가 낸댔냐? 너야말로 요구르트나 가져와. 이제부터 여긴 내 자리니까.”

“하아? 여기 원래 내 자리였다니까? 어이!”

 

타카스기는 떽떽대는 긴토키를 등진 채 돌아누워버렸다. 긴토키는 이제 막 만난 놈에게 무시를 당한 것 같다며 잔뜩 표정을 구겼다.

 

 

“…타카스기 신스케.”

“앙?”

“‘어이’ 같은 거, 아냐.”

 

옆에서 들려오는 이름에 긴토키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이름을 말할 줄은 몰랐던 눈치였다.

 

 

“어, 어엉. 사, 사카타 긴토키. 파르페 잘 부탁한다.”

“파르페 같은 소리. 요구르트 안 사올 거면 저리 가.”

 

타카스기는 제 등 뒤로 칫, 하는 소리와 함께 풀썩 눕는 기척을 느꼈다. 그는 조용히 눈을 떴다. 눈에 하나, 둘, 별이 비쳤다. 지독했던 그 하늘은 어디로 가고 투명하게 까만 하늘이 온 세상을 덮었다. 미움도, 쓸쓸함도 모두 달래주는 밤 아래가 간만에 온기로 차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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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은후글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