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비타카긴] 은인

2016. 2. 23. 22:04 from 은혼





 은인

WR. 고은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햇빛이 비친다. 나뭇잎이며, 풀이며, 바위며 어느 하나 할 것 없이 그 빛을 받아 반짝인다. 산 속 사이를 흐르는 냇물 소리는 청명했다. 새들의 지저귐은 평화로웠고, 아이들의 재잘거림은 활기를 띄웠다. 그들은 고기잡이 중인 듯 했다. 제각각 통발과 그물망을 들고 물속을 휘젓기를 몇 십분 째. 진이 빠진 아이 한 명이 잡힌 것이 있나 확인해보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자 긴토키는 물을 한번 내리치더니 볼멘소리를 했다.



  “여긴 없는 거 같은데, 이제 가자.”

  “가자고? 다른 곳으로?”

  “아니, 이만 돌아가자고!”

  돌아가자는 그의 말에 카츠라는 주눅이 들었다.



  “긴토키, 넌 조금 해보다가 안 되면 금방 포기하는 거냐? 의욕이라던가, 의지라고는 전혀 없군.”

  타카스기는 긴토키를 바라보며 입 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뭐야? 그러는 본인은 한 마리라도 잡으셨나.”

  “여긴 깊이가 얕아서 그런 거다. 잡아봐야 송사리만한 것들인데. 난 좀 더 깊은 곳으로 갈 거야.”

  “더 깊은 곳으로 가면 잡힐 줄 아냐? 그러다 물에 빠져도 난 모른다?”

  “물에 빠지는 건 네 녀석이겠지. 누구처럼 수영을 못하진 않거든. 가지도, 해보지도 못하는 주제에.”

  “가! 갈 수 있어. 너보다 큰 걸 잡아올 거야. 알겠냐?”



  타카스기의 도발에, 긴토키는 씩씩대며 앞장섰다. 그의 뒷모습을 보다 타카스기는 카츠라와 눈이 마주쳤다. 둘은 한번 키득거리고는 그의 뒤를 따라갔다.

 

 

 

  아이들은 계곡의 상류로 올라왔다. 그곳은 그들이 놀던 곳 보다 수심이 훨씬 깊어보였다. 큰 바위들이 계곡물 곳곳에 박혀있었고, 물살은 더욱 세었다. 긴토키는 뒤따라오던 두 아이들보다 더 깊은 곳에 있었다. 그의 움직이는 모습만 언뜻 보일 정도였다. 카츠라 근처에서 그물질을 하던 타카스기는 긴토키에게 신경이 쓰였다. 이곳은 발이라도 헛디디면 그대로 떠밀려 내려가기 딱 좋았다. 재수가 없으면 바위에 부딪혀 크게 다칠 수도 있었다. 자꾸만 안 좋은 예감이 들어, 타카스기는 조용히 긴토키가 있는 곳으로 올라갔다.

 

 

  “타카스기 녀석, 두고 보라지.”



  긴토키는 자신에 찬 표정으로 그물을 쳤다. 그리고 슬슬 앞으로 나가면서 물고기들을 몰았다. 그러나 그 앞쪽은 급격하게 수심이 깊어지는 곳이었다. 그것을 모르는 긴토키는 그대로 발을 내딛었다. 그는 몸부림 칠 새도 없이 물 밑으로 빨려 들어갔다.

  바위틈으로 언뜻 보이던 긴토키의 모습이 갑자기 없어지자, 그의 뒤를 쫓았던 타카스기의 표정 또한 없어졌다. 곧 불안과 두려움이 얼굴에 떠올랐다. 다급해진 그는 온몸으로 물살을 헤치며 긴토키가 있던 자리로 거슬러 올라갔다.

 

 

  긴토키는 잡고 있던 그물망대에 의지하며 수면 위로 올라오려고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물 속에서 아무리 발을 놀려도 소용없었다. 마치 그 발에 쇳덩이를 묶어놓은 것처럼 그는 가라앉고 있었다. 물이 코와 입에 쉴 새 없이 들어갔다. 숨을 쉬기도 벅찼다. 더 이상 몸에 힘을 줄 수가 없었다. 

  그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시야가 점점 흐릿해졌다. 이대로 죽는 건가. 긴토키는 생각했다. 그런데 그의 눈이 감기기 직전, 어렴풋이 무언가가 보였다. 저게 뭐지. 저것은 나를 죽음으로 데려가려는 저승사자인가. 아니, 저승사자라기엔 너무나 눈부시다. 그러면 저것은 나를 살리러 온 산신님인가. 아, 누구든 여기서 좀 구해줘.



  타카스기는 긴토키를 찾아 수면 아래로 내려갔다. 그는 바로 보였다. 타카스기는 자꾸만 가라앉는 그를 재빨리 품에 안고 수면 위로 올라갔다.

 

 


 

  계곡으로부터 약간 떨어진 곳에서 타카스기는 긴토키를 뉘여 놓았다. 그리고 자신도 숨을 골랐다. 어째서 거기까지 간 건지. 조금은 위험하단 생각을 하고 다니란 말이야. 타카스기는 긴토키를 바라보는 굳은 표정을 풀지 않았다. 이놈은 섞이면 섞일수록 왜 이렇게 손이 많이 간단 말이야. 어떻게 하나하나 신경을 안 쓸 수가 없어. 대체 왜.

  말없이 긴토키를 보다가 타카스기는 크게 숨을 내쉬었다. 답답했다. 괜히 그를 자극시킨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고, 자신 때문에 눈을 뜨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다. 시간이 오래 지난 것 같은데도 전혀 깨어날 기미가 없자 타카스기는 더 초조해졌다. 그는 긴토키를 마구 흔들었다.



  “야! 일어나, 긴토키.”

  “…….”

  “정신차려, 바보자식아!”

  “푸하. 콜록콜록.”

  마침내 긴토키는 물을 토하며 눈을 떴다. 그리고 잔기침을 몇 번 했다. 진정이 된 후 그가 제일 처음 본 것은 타카스기의 얼굴이었다. 아, 내가 보았던 것은. 긴토키는 제 마음이 천천히 놓이는 것을 느꼈다.



  타카스기는 눈을 뜬 그를 보자 긴장이 풀렸다. 다행이었다. 내내 불안했던 마음이 그대로 녹아내렸다. 한꺼번에 여러 감정이 들이치자, 그의 표정은 얼빠진 모습이 되었다. 긴토키는 제 몸을 붙잡고 있던 타카스기를 쳐다보았다.



  “누가 바보래냐. 바보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네가 바보지.”

  “물에 빠져 죽을 뻔 했던 주제에. 생명의 은인에게 그렇게 말해도 되냐?”

  “생명의 은인이 타카스기 너라면,”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타카스기의 팔에 의지해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타카스기의 몸이 긴토키 쪽으로 기울었다. 순간 둘의 거리가 꽤나 가까워졌다. 타카스기는 숨을 멈추었다. 긴토키의 숨이 낯설게 그를 간지럽혔다. 타카스기는 자신의 몸이 굳는 것을 느꼈다. 그는 얼른 몸을 비틀어 긴토키와 떨어졌다. 그의 행동에 긴토키는 왜 그러냐는 표정을 지었다.



  “뭐, 나라면 뭐. 그 와중에 그물망은 안 놓치고 있더라. 뭐야?”

  민망함에 타카스기는 화제를 돌렸다. 그의 말에 긴토키는 제 시선을 그물망으로 옮겼다.

  “아아, 산신님이 내어준 손인줄 알았건만, 저거였구만.”

  “산신님?”

  되묻는 타카스기의 목소리를 듣고도, 긴토키는 혼자 웃음을 지었다.



  내가 보았던 것은, 날 살려준 것은 산신님이구나. 타카스기와 똑 닮은. 분명, 살아서 저 바보의 얼굴을 다시 한 번 마주보라고 한 것이리라.



  “아니다. 내려가자. 즈라는 어딜 두고 온 거냐.”

  “아, 맞다.”

  “바보 맞구만.”

  긴토키는 놀리듯 웃는 그 표정을 짓고서는 먼저 일어섰다. 타카스기는 뭐냐는 식으로 툴툴대더니 곧 따라 일어섰다.



  “아, 하나 빚졌다. 타카스기.”

  긴토키는 뒤돌아 타카스기에게 말하고는 발을 떼었다. 그 말을 들은 타카스기는 가만히 그 말을 곱씹었다. 빚졌다, 라. 가슴 속에 무언가 묵직하게 자리 잡았다. 그에게서 받아야 할 것이 생겼다는 건가. 그게 뭐든, 그에게서 받는 거라면.

  타카스기도 긴토키를 뒤따랐다. 발걸음이 가벼워진 둘은 멀리 카츠라가 보이자 마구 손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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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은후글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