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양이 유독 붉을 때 생길 일을 조심하라.

즈라른 전력 60분 연성

 WR. 고은

 


 

 [지각도 습관이다] 후편.




“긴토키 자식, 또 지각이군.”

 

이제 카츠라 입에 긴토키의 지각이 붙어버린 듯 했다. 카츠라는 한숨을 내쉬었다. 대체 뭘 하느라 매일 이렇게 늦는 건지 그는 또 긴토키 걱정에 빠졌다.

 

“너, 네가 어째서…. 으윽.”

긴토키 앞으로 검은 정장 하나가 쓰러졌다. 그 남자와 마찬가지로, 긴토키의 주변에는 사내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긴토키는 고갤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제 제대로 서 있는 사람은 저 뿐인 것 같았다.

 

“호오. 이게 무슨 일인가, 긴토키.”

 

낮은 음성이 그가 있는 창고 안에 울려 퍼졌다. 그는 뒤를 돌아보았다.

 

“아, 도련님 납셨군. 어디 갔다 이제 오시나?”

“내 안부를 묻기엔 네놈 상태가 다 불쌍하군.”

 

그는 타카스기였다. 창고 문을 뒤로 하고 천천히 긴토키에게 다가온 타카스기는 한껏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그의 말대로, 긴토키는 이제 곧 쓰러져도 무방할 만큼 피투성이였다. 긴토키는 가쁜 숨을 내쉬면서도 씩 웃어보였다.


“이거? 네놈이 끌고 다니는 아저씨들하고 한판 놀아준 거지.”

“그래서, 타깃은?”

“타깃? 알까 보냐. 난 사람 죽이는 거, 안하거든.”

“뭐?”

“지금까지 받은 타깃들, 살아있다는 말이지. 그리고 마지막 타깃도.”

“하, 웃기지도 않는군.”

 

타카스기는 긴토키의 멱살을 잡았다. 그리고는 바닥에 내팽개치더니 그의 목을 발로 한껏 지르밟았다.

 

“네가, 언제부터. 더러운 오물에서 살던 놈이, 언제부터 고고한 척이야.”

“으윽. 긴상은, 말야. 켁, 커흡. 사람 죽이지 않기로. 약속, 했거든.”

“네놈은 나와의 약속만 유효하다고. 아니면 잊은 건가? 그렇다면 잊게 해주지. 네놈 삶의 고통도, 네가 사랑하는 그 놈 기억에서도.”

 

타카스기는 발에 무게를 실어 긴토키의 목을 더욱 짓눌렀다. 덕분에 긴토키의 얼굴은 새하얘졌다가 푸르게 변했다. 그는 한 팔로 타카스기의 발을 떼어 내려 했지만 되려 힘이 더 들어갔다. 긴토키는 허우적거리며 숨을 제대로 뱉어내지 못했다. 그의 다른 손은 애타게 제가 떨어뜨린 검을 찾고 있었다.

 

“아, 그 양이지사는 걱정 말아라. 내가 대신 잘 돌봐 줄 테니까 말이야. 네놈 대용품으로도 괜찮을, 커윽.”

 

타카스기의 배에 은색으로 빛나는 검이 관통했다. 그 검을 타고 그의 피가 뚝뚝, 긴토키의 팔에 흘렀다.

 

“그 놈을 돌봐 줄 사람은 나다. 내가 지켜.”

“너, 이 자식….”

 

긴토키는 잡은 검을 비틀었다. 그러자 타카스기가 피를 토했다. 덕분에 그 피가 고스란히 제 위로 쏟아져 내렸다. 그가 검을 뽑자, 타카스기는 긴토키 위로 쓰러졌다.

 

“하….”

 

긴토키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갈 수 있다. 이제, 제 시간에 맞춰 갈 수 있다. 그는 생각했다.

 

“아니, 네놈은…. 절대 못가.”


긴토키는 제 귓가에 퍼지는 타카스기의 목소리와, 옆구리에서 파고든 칼날이 동시에 겹쳐졌다. 긴토키는 제대로 숨을 쉬지 못했다. 역류하는 피와 함께 목이 막히는 기분이었다. 시야가 자꾸만 흐릿해졌다. 눈이 자꾸만 감겼다.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가야했다. 저를 기다리는 이에게로. 그의 눈에 열린 창고 문으로 벌써 석양이 지는 것이 보였다.

 

즈라가 많이 기다릴 텐데. 바보 같은 놈이라 미련하게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을 텐데. 움직여. 움직여라, 제발.

 

 

새빨갛게 불타는 저녁의 햇빛이 카츠라는 괜히 무서웠다. 꼭 짙게 흘린 피 같았다. 벌써 몇 시간이나 지났다. 아무리 늦어도 그는 이 만큼 늦는 사람이 아니었다. 게다가 약속까지 했다. 늦지 않겠다고. 이제 다 끝났다고. 대체 뭐가 끝났다는 것일까. 평소와는 다른 불안함이 그를 엄습했다.

“대체 어떻게 된 거냐, 긴토키….”

카츠라는 다시금 창밖을 바라보았다. 붉은 노을이 점점 흩어지는 것이 보였다.


아무 일이 없다면, 빨리 와라. 긴토키. 오늘만큼은,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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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은후글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