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모를 선물 하나

WR. 고은




“어이, 타카스기. 잠깐 나와 봐.”

 

한창 잔치가 벌어지는 와중, 긴토키가 타카스기를 툭툭치며 말했다. 조금 술에 취한 타카스기는 살짝 미소를 걸친 채 뭐냐는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긴토키는 그를 슬쩍 잡아끌더니, 주위에 ‘아아, 타카스기군이 조금 취한 것 같아서-’ 라고 둘러대고는 밖으로 데려갔다.

 

“헤에, 뭐냐.”

 

취기로 붉어진 볼이 꽤나 타카스기를 귀엽게 만들었다. 긴토키는 평소답지 않게 풀어진 그의 모습을 보며 안고 싶기도 했고, 불안하기도 했다.

 

“에, 저, 그 뭐냐. 할 말이 있어서 말이지.”

“그니까. 뜸 들일 거면 들어간다.”

 

타카스기가 뒤돌자마자 발걸음을 떼는 걸 보고, 긴토키는 다급하게 그의 팔을 잡았다.

 

“어이! 가는 게 너무 빠르다고?! 그러니까 말야.”

“빨리 말해.”

“하여튼, 타카스기는 성질도 급해. 기다려 봐.”

“대체 뭘 기다리라는 거냐?”

 

긴토키는 저를 올려다보며 묻는 타카스기를 피하며 불이 켜진 방 안을 힐끗힐끗 쳐다보았다.

 

“…너, 무슨 꿍꿍이야?”

“꿍, 꿍꿍이라니? 그런 거 전혀 없는뎁쇼?”

“그러면 왜 끌고 나와선 아무런 말이 없어?”

“그, 그게…”

“네 놈이 그저 또 내 흥을 깨려고 했나보군. 됐다, 들어간다.”

“어이, 타카스기!”

 

긴토키에게 붙잡힌 팔을, 뭐 묻은걸 터는 것 마냥 한번 탁, 빼더니 그대로 멀어지는 타카스기였다. 긴토키는 머릴 긁적이며 얼른 그의 뒤로 쫒아갔다. 그리고 그를 그대로 껴안았다.

 

“…아?”

“가지 말라고. 이거, 해주고 싶었으니까.”

“이거 놔라, 변태.”

“에엑, 변태?! 누가?!”

“너지, 누구겠냐. 놔라. 좋은 말로 할 때.”

“그치만, 생일이니까….”

“하? 그럼 이게 생일 선물이냐?”

 

그 말에, 긴토키는 고갤 끄덕였다. 그 바람에 둘의 볼이 맞닿아 쓸렸다 떨어졌다. 순간 놀란 타카스기는 그의 팔을 풀어내고 두 발짝, 그에게서 멀어졌다.

 

“이상한 걸로 사람 놀라게 하지 마, 변태. 내게서 떨어져.”

“에에? 타카스기군, 그러면 섭섭하다고? 생일 선물로 이정도는 돼야지, 암.”

“너하고 내가 사귀기라도 하면 모를까, 변태자식. 말 걸지 마라.”

 

그 때, 방 안에서 나던 불빛이 꺼졌다. 순간, 밝았던 그들 둔영에는 달빛만이 빛을 내었다. 긴토키는 그것을 먼저 알아차렸다.

 

“아? 무슨 일이지? 일단 들어가자, 타카스기.”

“어? 어.”

 

둘은 얼른 움직였다. 곧, 방문 앞에 선 둘은 한번 심호흡을 하더니 방문을 열었다.

 

“생일 축하드립니다, 신스케님!”

“생일 축하하네, 타카스기.”

“와하핫. 생일 축하하는구먼, 신스케.”

 

펑엉, 펑. 폭죽 터지는 소리와 함께 방에 불이 켜졌다. 그러자 아까 자리에 있던 대원들이며 카츠라, 사카모토까지 모두 타카스기를 보며 웃고 있었다.

 

“이, 이게 무슨…”

“자네 생일 축하를 위한 파티라네. 승리를 자축하는 연회라는 건 명목이지.”

“진짜는 자네 생일을 축하하려 모인 걸세, 아하하핫!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자넨 나오질 않으니 말여.”

 

타카스기는 긴토키를 향해 뒤돌아보았다. 멋쩍게, 그리고 장난궂게 긴토키가 웃고 있었다. 그가 계속 노려보자, 긴토키는 작게 말했다.

 

“나는 시간을 끌겠다고 했지. 하지만 도통 할 말이 생각 안나서 말야. 그치만 그것도 분명, 선물이었다. 생일 축하해, 타카스기.”

 

타카스기는 표정을 굳히더니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자 모든 사람들이, 소란스럽게 굴던 제 입들을 다물었다. 타카스기는 화를 참는 것처럼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뜨며 말했다.

 

“고맙다.”

 

그리고 그는 천진한 웃음을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다시 축하의 건배소리와,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8월의 달이 채 차기도 전에, 그들의 축하 소리가 달의 나머지 부분을 꽉 채우는 듯 했다.






---

'은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보로] 날개  (0) 2017.01.14
[타카히지] 꽃반지  (0) 2016.08.09
[긴타카] 생일 선물  (0) 2016.08.09
[타카긴타카] 안녕, 천사님.  (0) 2016.08.02
[히지긴] 비가 내리고, 음악이 흐르면  (0) 2016.07.23
Posted by 은후글쓴다 :

[긴타카] 생일 선물

2016. 8. 9. 23:29 from 은혼





생일 선물

WR. 고은




“긴상 왔다-.”

 

긴토키가 현관문을 닫고 복도를 지나쳐 안방 문 앞으로 오기까지, 집안에서는 아무런 기척도 나지 않았다.

 

“타카스기…?”

 

그는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탁자 위에 타카스기가 엎드려 누워 있었다. 긴토키는 안으로 들어와 그의 옆에 앉았다. 조심스레 얼굴을 들여다보니, 다행히 자고 있는 것 같았다.

 

“휴.”

“뭘 그렇게 한숨을 내쉬나.”

 

타카스기에게 별일이 없음을 확인한 그는 그제야 마음을 놓았다. 긴장한 몸을 풀으려 자세를 고쳐 앉는데, 살짝 눈을 뜬 타카스기가 그를 보고 있었다.

 

“아이고, 긴상 놀랬잖냐.”

“어디에 놀랐다는 거야. 언제 왔나.”

“방금 왔다. 많이 피곤했냐?”

“어어, 그냥.”

 

여전히 엎드린 채 졸린 눈으로 자신을 보는 타카스기의 머리를, 긴토키는 다정한 손길로 쓰다듬었다. 타카스기는 그것이 기분 좋은 듯 입가에 미소를 띄웠다.

 

“타카스기, 잠깐만.”

 

긴토키는 그렇게 말하더니 쓰다듬던 손을 타카스기의 어깨로 내려 제 팔에 감쌌다. 그러더니 다른 한 손으로 그를 제게로 끌어당겼다. 부드럽고 천천히, 저를 끌어안는 긴토키의 품이 단단했다. 타카스기는 아무 말 없이 그대로 안겼다.

 

“호오? 웬일로 별 저항이 없으십니다, 타카스기군?”

“해주기라도 바라는 거냐.”

“아니요-.”

 

그러더니 긴토키는 타카스기의 이마 위에 입을 맞추었다. 갑작스런 입맞춤에 타카스기는 움찔했다.

 

“어이, 오늘따라 왜 그러는 거냐. 피곤하다. 오늘은 안 돼.”

“에엑? 뭐가 안 된다는 겁니까? 긴상은 전혀 생각도 안했어요, 요 녀석아.”

“그럼 뭐야.”

 

저를 올려다보며 묻는 타카스기에, 긴토키는 무어라 말을 하려다 그대로 멈추어버렸다.

 

“음? 파리 들어간다.”

 

입도 다물지 않고 저를 바라보는 긴토키에게, 타카스기는 실없는 말을 하며 살짝 웃었다. 그 모습에 긴토키는 조용히 입을 다물며 그를 품에 꼭 안았다.

 

“사랑해, 타카스기.”

“…진짜 왜 그러냐, 너.”

“생일, 축하해.”

“…아,”

“몰랐었지? 또 까먹은 거지? 그럴 줄 알았어. 타카스기군을 챙겨주는 건 긴상 뿐이지?”

“하, 웃기는 소리. 챙길 필요가 없으니까 챙기지 않은 거다.”

“챙길 필요, 있어. 네가 태어났으니까. 오늘이 없었으면, 너도 없었을 거다. 그러면 널 사랑하는 나 또한 없어. 어떤 날 보다도, 네가 태어난 날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날일 거다.”

“…”

“다만, 생일인데도 선물도, 맛있는 밥도 못해줘서. 못나게도 이렇게 안아주는 것 밖에는 할 수 없어서. 그런 변변치 못한 놈이 네 애인이라서…”

 

말끝을 흐리는 긴토키로부터 살짝 몸을 뗀 타카스기는 다시금 그를 올려다 보았다. 그의 눈이 가득 담겼다.

 

“정정해야겠군. 이제부터 생일이라는 거, 챙겨야겠어. 네가 옆에 있을 동안은 말이다. 날 사랑하는 네가 없다면 내가 태어난 이유 따윈, 더 이상 중요하지 않으니. 생일 선물 같은 거, 필요 없다. 너만 있으면 되니까.”

“예쁘게 말도 잘하는걸, 타카스기군? 오냐, 이제부터 네가 죽고 내가 죽을 때까지 꼭 같이 생일, 맞이하자. 평생 옆에 있을 거니까.”

“…고맙다, 긴토키.”

“고맙긴. 나와 함께 있어줘서 내가 고맙다.”

 

타카스기는 긴토키의 품에 파고들었다. 그러자 나지막이 울리는 심장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가 너무도 따뜻하고 편안해서, 타카스기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등 위로, 저를 토닥이는 긴토키의 손길이 느껴졌다.

 

 

“생일 축하해, 타카스기.”





---

Posted by 은후글쓴다 :

 

 

 

 

 

안녕, 천사님.

WR. 고은

천사님 두 분께.

 

 

 

 

 

“엄마, 나도 저거 갖고 싶어.”

“응? 저게 갖고 싶어요?”

“네!”

 

아이의 말에 엄마는 손을 잡고 가게에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해맑게 웃으며 가게를 나서는 두 사람이, 긴토키의 옆을 스쳐지나갔다.

 

 

“엄마 최고!”

 

귀를 찌르는 목소리에 긴토키는 뒤를 돌아보았다. 아이가 아직 가격표도 안 뗀 인형을 품에 꼭 안은 채 제 엄마에게 엄지손가락을 추켜올리는 모습이 보였다. 이윽고 그들이 떠나자, 거리엔 긴토키 혼자 남았다. 그러나 그는 그들이 사라진 자리에 뭐라도 있는 것처럼 멍하니 서 있었다.

 

“…아, 파르페 먹고 싶다.”

 

그는 천천히 고갤 돌리더니, 다시 발걸음을 떼었다.

 

 

 

*

 

 

 

“나가. 꼴도 보기 싫다!”

 

타카스기는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았다. 얼마나 모질게 맞았으면, 입술이 다 터졌다. 말소리가 끝나기 무섭게, 마당에 쓰러진 그를 두고 방문은 거세게 닫혔다. 탁, 하는 소리가 그의 가슴 속을 빙빙 울렸다.

 

“….”

 

어느 새 바닥에 노을빛이 깔렸다. 멀찍이 떨어져 쑥덕이던 하인들도 떠나고, 여전히 분을 삭이지 못하던 아버지의 목소리도 사그라들었다. 그제야 타카스기는 정신을 차린 것처럼 고개를 들었다.

 

그는 천천히 일어났다. 여전히 아무런 말도, 표정도 없었다. 그는 옷을 탁탁 털어내더니, 망설임 없이 대문 밖을 나섰다.

 

 

 

*

 

 

 

언제 해가 져버린 건지, 주위는 온통 검푸르렀다. 타카스기는 제가 떠나 온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음울하기 짝이 없는 저 하늘이 저 마을을 물들였나보다. 애정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곳이니 그러고도 남았다. 무정한 공허가 그의 속을 파고들었다.

 

그는 자리에 털썩 앉더니, 풀밭 위로 누웠다. 보이는 건 푸르뎅뎅한 하늘이 반, 무성한 이파리들이 반. 저리 많은 이파리를 나게 할 수 있는 건 제 옆에 우뚝 선 저 커다란 벚나무뿐이리라.

 

지난 번 하인이 얘기해준걸 떠올려보면 그것은 제 나이보다도 오래된 나무였다. 한창 벚꽃이 만개할 때였다. 왜 이렇게 예쁘게 피는데 아무도 찾질 않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이 언덕을 오기에는 험하기도 하고, 꽁꽁 숨겨져 있어서 아무도 찾지 않는다고 한 것이 기억이 났다. ‘아무도 찾지 않는다.’ 라. 그 말을 곱씹을 때였다.

 

 

“어이, 꼬마.”

 

나무에서 웬 목소리가 났다. 어림잡아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목소리 쯤 되었다. 흠칫 놀란 그는 얼른 몸을 일으켰다.

 

“누, 누구야?”

“알아서 어쩌려고?”

 

가지 사이에서 누군가가 타카스기를 놀리는 말투로 말했다.

 

“글쎄. 상관없나.”

“응?”

“몰라. 죽일거면 죽이던가.”

 

 

그러더니 타카스기는 다시 자리에 누워버리더니 눈을 감아버렸다. 그제야 나무 속 목소리의 주인은 고개를 내밀었다. 긴토키였다.

 

그는 가뿐히 나무에서 내려오더니 타카스기의 옆에 앉았다. 바스락 하는 소리와 함께, 풀썩이는 소리가 들리자 타카스기는 눈을 떠 긴토키를 바라보았다. 은색 머리가 참으로 신기했다.

 

 

“흥, 재미없는 녀석. 누가 죽인 댔냐.”“치근덕대지마, 꼬마.”

“누가 꼬만데?!”

“됐고, 볼 일 없으면 꺼져.”

“흥, 네 놈이야말로. 여기 원래 내 자리라고?”

“뭐?”

“그러니까-. 내 자리라고. 내가 계속 여기 있었으니까.”

“하, 어이가 없군.”

“여기 있으려면 자릿세 내.”

“이건 무슨….”

“너, 갈 데 없잖아.”

 

 

막무가내로 말하는 긴토키가 기가 찼던 타카스기는 고개를 돌리려고 했다. 하지만 갈 데 없다는 그 한마디에 그의 시선이 꽁꽁 묶여버렸다.

 

“보여, 네 눈에서. 나랑 똑같아.”

 

긴토키는 타카스기와 눈을 마주했다. 타카스기는 갑자기 부딪히는 시선에 얼른 고개를 돌렸다.

 

“뭐가, 뭐가 보인다는 거야. 네가 뭘 알아.”

“외롭다는 거. 네놈 두 눈에서 외로움이 흘러넘친다고?”

 

 

긴토키는 타카스기를 보며 빙글 웃었다. 동정인가, 타카스기는 실소를 터트렸다. 웃음을 거두며 고개를 돌리자, 그제야 제대로 보였다. 자신을 내려다보며 싱긋 웃는 그가, 그의 눈이. 이상했다. 꼭 자신을 보는 것 같았다. 아, 저 놈이 말했던 것이 이건가.

 

동정심 같은 게 아니었다. 그렇다고 유대감이라고 말하기엔 이제 막 처음 본 놈이었다. 그래, 그것이다. 같은 입장. 그래서 이해할 수 있던 것이다. 서로가 얼마나 닮았는지, 얼마나 외로웠는지, 얼마나 자신을 봐주길 바랬는지.

 

 

“그러니까, 자릿세는 파르페로 부탁해.”

“누가 낸댔냐? 너야말로 요구르트나 가져와. 이제부터 여긴 내 자리니까.”

“하아? 여기 원래 내 자리였다니까? 어이!”

 

타카스기는 떽떽대는 긴토키를 등진 채 돌아누워버렸다. 긴토키는 이제 막 만난 놈에게 무시를 당한 것 같다며 잔뜩 표정을 구겼다.

 

 

“…타카스기 신스케.”

“앙?”

“‘어이’ 같은 거, 아냐.”

 

옆에서 들려오는 이름에 긴토키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이름을 말할 줄은 몰랐던 눈치였다.

 

 

“어, 어엉. 사, 사카타 긴토키. 파르페 잘 부탁한다.”

“파르페 같은 소리. 요구르트 안 사올 거면 저리 가.”

 

타카스기는 제 등 뒤로 칫, 하는 소리와 함께 풀썩 눕는 기척을 느꼈다. 그는 조용히 눈을 떴다. 눈에 하나, 둘, 별이 비쳤다. 지독했던 그 하늘은 어디로 가고 투명하게 까만 하늘이 온 세상을 덮었다. 미움도, 쓸쓸함도 모두 달래주는 밤 아래가 간만에 온기로 차올랐다.






---

Posted by 은후글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