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고, 음악이 흐르면

긴수 전력 60분

WR. 고은


 



“하필 축제 날 비라니.”

 

히지카타는 거세게 내리는 비를 보며 중얼거렸다. 창 밖으로 사람들이 허둥지둥 비를 피해다니는 모습이 눈에 비춰졌다.

 

“모처럼 왔는데 아쉽게 됐구만, 부장나리.”

 

의자에 몸을 쭉 펴 앉은 긴토키가 시큰둥하게 말했다. 가게 안에서 옛 노래가 흘러나왔다.

 

“남 일처럼 말하지 마라. 너랑 온 거라고.”

 

히지카타는 그에게 눈을 흘겼다.

 

“에, 긴상은 오늘 나가지 말자고 했습니다? 케츠노 아나께서 비가 온다고 친히 말씀해주셨다고? 기어코 끌고 나간 게 누구시더라?”

“너, 다시 말해봐.”

“축제라니, 언제부터 그런 걸 다 챙기셨대. 결국 와서 뭐 하나 제대로 구경도 못하고 말야. 닭 쫓던 개가 따로 없구만?”

“…지금 비꼬는 거냐.”

“아닌데요-. 긴상이 꼬은 건 다리뿐인데요.”

“하, 됐다. 괜히 불러서 미안하다. 시간 낭비하게 했군. 먼저 간다.”

 

결국 히지카타는 자리를 떠버렸다. 짤랑. 가게 문에 달린 종소리가 울렸다. 창 밖으로 히지카타가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당황한 긴토키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노랫소리와, 사람들이 내는 소음이 뒤섞여 그의 귓가에 부서졌다.

 

 

 

비가 따가웠다. 그의 몸에 부딪히는 빗방울이 너무나 세서 그는 온 몸이 다 아팠다. 홧김에 가게를 나왔지만, 비를 맞다보니 잔뜩 올랐던 열이 식어버린 그였다. 그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원망스레 하늘을 쳐다보았다. 비는 어느 새 그쳐있었다. 까만 구름 사이로 언뜻언뜻 달빛이 비춰졌다.

 

그래, 잠깐이면 그칠 소나기였다. 잠깐 참으면 지나갈 상황이었다. 그것을 참지 못하고 긴토키에게 또 다시 상처를 주었다. 아무리 주위에서 귀신부장이니, 냉철한 사람이니 해도 긴토키에게만큼은 이성적이지 못했다. 그는 자신이 죄스러워졌다. 그는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발걸음이 점점 빨라져갔다.

 

 

 

히지카타는 고개를 들자 가게 앞에 서 있는 긴토키가 보였다. 그는 숨을 고르게 쉬려 애썼다. 막 뛰어온 탓이었다. 그는 긴토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눈을 똑바로 마주보았다.

 

“긴토키, 미안하다.”

 

긴토키는 그런 히지카타의 모습에 움찔했다.

 

“뭐, 나도 잘 한 거 없으니까.”

 

그의 말에, 히지카타는 마음이 놓인 듯 그제야 활짝 표정을 풀었다.

 

“그래도, 혼자 두지는 마라.”

 

긴토키가 시선을 돌리며 작게 말하자, 히지카타는 입술을 깨물며 웃음을 참았다. 그는 대답 대신, 긴토키의 손을 잡아끌었다.

 

“어어? 어디 가는데?!”

 

긴토키의 물음에도 히지카타는 그의 손을 잡은 채 말 없이 인파를 뚫고 지나갔다.

 

 

벌써 사람들이 많이 몰려있었다. 히지카타는 그 곳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여긴 어딘데?”

“…아, 시작한다.”

“응?”

 

피유우-, 펑-.

긴토키가 주위를 채 살피기도 전에 커다란 폭발음이 그의 귀를 울렸다. 곧, 하늘에 예쁜 불꽃이 피어올랐다.

 

 

“이거, 보고 싶었어. 너랑 같이.”

 

히지카타는 긴토키의 손을 꼭 잡으며 담담하게 말했다. 긴토키는 고개를 돌려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연이어 터지는 불꽃을 바라보는 그의 얼굴 위로 불빛이 비추어졌다. 그것이 퍽, 설렜다. 긴토키는 떨리는 미소를 지으며 시선을 하늘로 옮겼다.

 

히지카타는 맞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긴토키도 놓지 않을 것처럼, 꼭 깍지를 끼었다.

“같이 있게 해줘서, 고마워.”

“나야말로.”






---

Posted by 은후글쓴다 :

 

 

 

 

예고 없이 나타나는 건 비 뿐만이 아니다.

WR. 고은

 

 

 

 

 

“마지막으로 날씨를 전해드리면서 마치겠습니다. 케츠노 아나?”

“네, 케츠노 아나운서입니다. 현재 에도 곳곳에 벚꽃이 피기 시작했는데요, 이번 주 내에 만개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하, 지, 만! 호사다마라고 하죠? 안타깝게도 비가 내린다고 합니다. 언제 올지는 몰라요? 모쪼록 잘 대비하시길 바래요. 특히, 거기! 업무 때문에 다크서클이 내려앉은 당신! 곧 썩어가는 폐품마냥 하품하는 당신! 언제 올지 모르는 건 비 뿐만이 아니랍니다! 우산을 꼭 챙기지 않으면 큰일 날지도? 그럼 저는 이만!”

 

 

“얼레? 저거 완전 히지카타 씨 아닙니까? 썩어가는 폐품, 히지카타 씨?”

티비를 보던 오키타는 손으로 히지카타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 옆에서 푹 꺼진 눈을 겨우 뜨며 하품하던 히지카타는 곧 입을 다물었다.

“아아. 대비는 늘 하고 있다, 아나운서 양반. 양이지사 놈들을 베어버릴 대비라면 말이야.”

“헤에, 글쎄. 지금은 꼬질꼬질하게 때 묻은 빨랫감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데요. 냄새난다구요?”

오키타는 코를 쥐며 어디서 가져온 건지 모를 스프레이를 뿌렸다.

 

“아악, 눈! 네놈, 그거 살충제 아니냐!”

“에-, 해충은 박멸해야죠. 죽어, 히지카타.”

히지카타는 오키타가 뿌리는 스프레이를 막으려 손을 마구 휘저었다.

“어이, 소고. 그만해라. 안 그래도 썩어가는 쓰레기에 스프레이를 뿌리면 불난다고?”

복도에서 히지카타와 오키타를 본 곤도는 방으로 들어와 오키타를 제지했다. 그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행동을 멈추었다.

 


“…곤도 씨. 그거 결국 내가 쓰레기라는 소리잖아.”

“하하하하. 그런가. 아무튼, 너도 좀 쉬엄쉬엄 해라. 가끔은 네 몸도 좀 보살피라고.”

“이게 다 당신들이 말썽을 피워놓으니까 생기는 일이잖아! 꼭 내가 일부러 일을 찾아서 하는 것처럼 말하는데, 워커홀릭 같은 거 아니거든?!”

“그래그래, 토시. 알겠다고. 그런 의미에서 대원들하고 벚꽃 구경이라도 가려는데, 어떠냐?”


“하아? 미안하지만 난 됐수다. 그 시간에 차라리 잠을 자겠어.”

“그러지 말고, 토시. 기분전환도 할 겸 말이야.”

“그래요, 히지카타 씨. 진짜 썩어 뒈지고 싶습니까? 그러면 나야 좋지만.”

“아, 그래. 썩어 뒈지고 싶으니까. 한 발자국도 못나가겠다고, 지금.”

“흐음, 그러냐. 알겠다. 그러면 서류는 그만 보고 오늘만큼은 쉬어라.”

 

곤도는 히지카타의 어깨를 두드렸다. 히지카타는 그것이 기운 내라는 의미처럼 느껴졌다. 그는 곤도와 오키타가 나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빨리 들어가 눕고 싶다고 간절하게 생각했다.

 

 

잠시 뒤, 둔영 마당이 소란스러워졌다. 대원들이 신에 겨워 떠드는 소리가 방 안으로 파고들었다.

 

“후우, 신났군.”

그는 얼굴을 찌푸리더니 방문에서 돌아누웠다. 그래, 빨리 가라. 그는 속으로 생각하며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곧 그들이 나간 건지, 그가 잠에 빠진 건지 바깥소리가 아득해졌다.

 

 

 

“세상모르고 자는군.”

말하는 낮은 목소리에 옅게 웃음이 배었다. 언제부터 와 있던 건지, 타카스기는 히지카타의 옆에 앉아있었다. 그는 제 품에서 곰방대를 꺼내들었다. 사락, 옷감끼리 스치는 소리가 가볍게 귓가에 맴돌았다. 그 때, 그의 손목이 붙잡혔다.

“자는 사람 옆에서 피울 셈이냐.”


히지카타였다. 그는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고 고갤 돌려 타카스기를 바라보았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그가 보였다.


“깼군. 나 때문인가.”

“그렇다고 하면, 가려고?”

히지카타는 타카스기를 향해 씩 웃어보였다. 그 모습에, 붙잡힌 손목을 내리며 타카스기는 작게 입 꼬리를 올렸다.


“글쎄. 가길 바라는 건가.”

“그게 왜 그렇게 흘러가는 건데?!”

“흐응?”

타카스기의 말에 히지카타는 얼른 일어나 그와 시선을 맞추었다. 그러자 타카스기는 눈썹을 치켜세우며 그를 바라보았다.

“뭐, 뭐.”

“대답은?”

“아니지, 당연히.”

그제야 타카스기는 만족한 듯 표정을 풀었다. 히지카타도 덩달아 표정이 풀어졌다.

“언제부터 온 거냐.”

“글쎄.”

“위험하다. 네 신분은 알고 들어온 거냐?”

“흐음. 내 신분을 알고도 만나는 넌. 위험하지 않은가?”

타카스기는 눈을 가늘게 뜨며 놀리는 투로 말했다.

“그거야…. 아무튼, 사람들이 언제 들어올지 몰라. 나가지.”

 

히지카타는 눈을 슬쩍 피하더니, 이불을 걷고 서둘러 일어나려 했다. 하지만, 이번엔 타카스기가 그의 손목을 붙잡았다.

 

“나는 여기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만.”

 

그러더니 그는 히지카타를 제게 끌어당겼다. 잠이 깨긴 했지만 몽롱함이 가시지 않았던 히지카타는 힘을 줄 새도 없이, 타카스기의 품에 안겨버렸다.

 

“읏! 무슨 짓이야?!”

당황해서 목소리가 커진 히지카타는 그의 팔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타카스기는 다른 한 팔로 그의 배를 감싸 꼭 끌어안았다.

 

“꼭 싫은 것처럼 구는 군.”

 

타카스기는 제 입술을 히지카타의 목에 갖다 대었다. 그리고 그 위로 입술을 달싹였다. 그 덕에 히지카타는 온 신경이 곤두섰다.

 

“으읏, 그런 건. 흐으.”

“그런 건?”

“흐읍, 거기에 입술, 대고, 으응. 말하짓, 마…흐응….”


타카스기가 살짝 고개를 돌리자, 새빨개진 귀와 입술을 깨물며 제 숨소릴 막는 히지카타가 보였다. 그것이 못내 사랑스러운 양, 그는 웃음을 터뜨렸다.

 

“뭐가 웃기다고 웃어?!”

“귀여워서.”

“아앙?!”

“…”

 

타카스기는 대답이 없었다. 히지카타는 무슨 일인가 싶어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그와 눈이 마주쳤다. 타카스기는 피하지 않고 지긋이 바라보았다. 짧은 순간, 히지카타는 그 눈에 사로잡힌 기분이 들었다. 아차, 싶은 그는 멍해진 제 입을 다물려고 했다.

 

“흡…!”

 

그의 입을 막은 것은 타카스기였다. 그는 히지카타에게 입을 맞추며 한 손으로 그의 머리를 감쌌다. 갑작스레 숨이 막힌 히지카타는 벌어지는 입술 사이로 깊게 숨을 뱉었다. 그리고는 진정을 한 것처럼, 커다래진 눈을 감으며 타카스기의 옷자락을 꼭 잡았다.

 

 

“흐응….”

입술을 떼자 히지카타가 얇게 신음을 흘렸다. 그는 타카스기에게 기댔다. 그의 심장이 뛰는 소리가 들렸다.

 

“사랑한다.”

한 글자, 한 글자에 그의 심장 소리가 더욱 커졌다. 그 소리가 온통 저를 가득 채워서, 되려 제 심장이 더욱 쿵쿵대는 히지카타였다.

 

 

“이제 정말 올 것 같군.”

타카스기는 슬며시 제게서 히지카타를 떼어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히지카타는 이미 방문 앞에 선 타카스기의 등 뒤로 다가갔다.

 

“가는 거냐.”

“그래.”

“…타카스기.”

 

한 발 내딛으려는 타카스기를, 히지카타는 불러 세웠다. 그리고 한 발짝 다가가 그를 껴안았다.

 

“싫어한다는, 그런 게 아냐. 사랑한다, 내가 더.”

 

그를 감싼 팔에서 심장이 뛰는 울림이 전해졌다. 타카스기는 조용히 손을 올려 그의 손을 감쌌다. 꼭 쥔 손에서 따뜻함이 퍼졌다.

 

이제는 정말 보내야할 때였다. 히지카타는 아쉬운 듯 천천히 제 팔을 풀었다. 타카스기는 방문을 열었다.

언제 온 건지,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 냄새와 함께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땅은 이미 젖어있었다. 그 위를 흐르는 빗물을 타고 벚꽃이 춤을 추었다.

 

“비가 꽤 내렸나보군.”

타카스기가 중얼거렸다. 그 사이, 히지카타는 우산을 그에게 건넸다.

“가져가라.”

그는 그것을 받아들 것처럼 팔을 뻗었다. 그러나 그의 손은 우산을 지나쳐 히지카타를 끌어안았다.

“고맙다. 돌려주러 오마.”

 

 

조용히 귀에 속삭였던 타카스기는, 붙잡을 새도 없이 그를 떠났다. 히지카타는 멍하니 그가 있던 자리를, 또 그가 지나간 자리를 내다보았다. 하나하나 온기가 남아있는 듯 했다.

 

 

“아나운서 말이 맞군.”

약속 없이 찾아와, 기약도 하지 않고 떠나는 것이. 비도, 너도, 그리고 우리도.

 

쉬이-, 바람이 한 번 불었다. 그 덕에 꽃잎이 흩날렸다. 팔랑이며 날갯짓 하는 나비처럼, 바람을 탄 것처럼 자유로이. 바깥을 흐릿한 풍경 속, 저들만이 유난히도 분홍빛을 발했다.






---

Posted by 은후글쓴다 :

 

 

 

 

운명이란 이름 아래

긴수 전력 60분

WR. 고은

 

 

 

 

 

어이, 타카스기. 네놈이 나 보다 먼저 죽는 건 사양이다.

누가 할 소리. 네 시체 따위 볼 일 없게 해라.

 

등 뒤로 오갔던 그 말들이 왜 갑자기 생각이 난 건지. 이 상황에서 왜 그 날이 다시 떠오른 건지.

 

 


“여어, 타카스기군. 오랜만이다?”

“이런 상황에서 잘도 인사하는군.”

“이런 상황이니까 만난 거잖아? 너하고 나.”

 

우리는 조직에서 함께 길러졌고, 각기 갈라졌다. 그리고 세력을 키우고 성장했다. 백야차라는 이름으로, 귀병대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곳도 달랐고 취급하는 사업도 달랐다. 해서, 다시는 만나지 않을 줄 알았다.

 

“너하고 손을 잡다니, 희대의 실수다.”

“에, 그거 긴상을 두고 하는 말입니까?”

“너 아니면 누구겠냐. 방해다. 네 놈은 뒤에서 떡이나 받아먹어.”

“너야 말로 우유나 마시고 있지 그러냐? 몇 년이 지나도 그대로라니. 영양부족은 아닐까나?”

다치지 말란 얘기다.”

“응?”

 

우리가 너와 손을 잡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처음에는 놀랐고 다음으론 기뻤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무서웠다. 네가 위험해질까봐, 네가 이 일로 죽어버릴까봐.

 

“타카스기.”

“왜.”

“나, 이제 어린애 아니라고?”

“뭐?”

“그렇게 걱정하는 얼굴, 하지 말라는 거야. 제 앞가림은 하니까.”

“하아? 꽤 자신만만하군.”

“네가 하는 걸, 내가 못할 것도 없지.”

긴토키, 기억나나.”

“뭐가?”

“우리가 조직에서 나왔던 날.”

“아아, 기억하지.”

“다시 한 번 말하지. 난 아직도 네 놈 송장 따위 보는 건 사양이다.”

“…”

“그러니까 살아라. 살아 돌아오면. 할 말, 있으니까. 반드시 살아남아라.”

 

다신 만나지 못할 줄 알았다. 그래서 말하지 못했다. 나만 숨기면 될 일이었으니까. 나만 입 다물고 아무렇지 않은 척 하면, 평소처럼 지내고, 평소처럼 웃고, 아무 눈물 흘리지 않고도 헤어질 수 있으니까. 이대로 잊히겠지, 이대로 묻히겠지. 갈라진 후에도 되살아나는 감정을, 기억을 억지로 짓눌렀다. 그러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운명은 그리 간단하진 않은 모양이었다. 우리는 다시 만났고, 다시 동료로서 등을 맡겼다. 그렇다면 더 이상 숨길 이유가 없다. 나는 너를 믿고, 너는 나를 믿으니. 내가 이 믿음에 기대지 못할 이유가 없다. 여기서 네 손을 잡았으니, 다시는 놓지 않을 테다. 두 번 다시 헤어지지 않아.






---

Posted by 은후글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