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고, 음악이 흐르면

긴수 전력 60분

WR. 고은


 



“하필 축제 날 비라니.”

 

히지카타는 거세게 내리는 비를 보며 중얼거렸다. 창 밖으로 사람들이 허둥지둥 비를 피해다니는 모습이 눈에 비춰졌다.

 

“모처럼 왔는데 아쉽게 됐구만, 부장나리.”

 

의자에 몸을 쭉 펴 앉은 긴토키가 시큰둥하게 말했다. 가게 안에서 옛 노래가 흘러나왔다.

 

“남 일처럼 말하지 마라. 너랑 온 거라고.”

 

히지카타는 그에게 눈을 흘겼다.

 

“에, 긴상은 오늘 나가지 말자고 했습니다? 케츠노 아나께서 비가 온다고 친히 말씀해주셨다고? 기어코 끌고 나간 게 누구시더라?”

“너, 다시 말해봐.”

“축제라니, 언제부터 그런 걸 다 챙기셨대. 결국 와서 뭐 하나 제대로 구경도 못하고 말야. 닭 쫓던 개가 따로 없구만?”

“…지금 비꼬는 거냐.”

“아닌데요-. 긴상이 꼬은 건 다리뿐인데요.”

“하, 됐다. 괜히 불러서 미안하다. 시간 낭비하게 했군. 먼저 간다.”

 

결국 히지카타는 자리를 떠버렸다. 짤랑. 가게 문에 달린 종소리가 울렸다. 창 밖으로 히지카타가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당황한 긴토키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노랫소리와, 사람들이 내는 소음이 뒤섞여 그의 귓가에 부서졌다.

 

 

 

비가 따가웠다. 그의 몸에 부딪히는 빗방울이 너무나 세서 그는 온 몸이 다 아팠다. 홧김에 가게를 나왔지만, 비를 맞다보니 잔뜩 올랐던 열이 식어버린 그였다. 그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원망스레 하늘을 쳐다보았다. 비는 어느 새 그쳐있었다. 까만 구름 사이로 언뜻언뜻 달빛이 비춰졌다.

 

그래, 잠깐이면 그칠 소나기였다. 잠깐 참으면 지나갈 상황이었다. 그것을 참지 못하고 긴토키에게 또 다시 상처를 주었다. 아무리 주위에서 귀신부장이니, 냉철한 사람이니 해도 긴토키에게만큼은 이성적이지 못했다. 그는 자신이 죄스러워졌다. 그는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발걸음이 점점 빨라져갔다.

 

 

 

히지카타는 고개를 들자 가게 앞에 서 있는 긴토키가 보였다. 그는 숨을 고르게 쉬려 애썼다. 막 뛰어온 탓이었다. 그는 긴토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눈을 똑바로 마주보았다.

 

“긴토키, 미안하다.”

 

긴토키는 그런 히지카타의 모습에 움찔했다.

 

“뭐, 나도 잘 한 거 없으니까.”

 

그의 말에, 히지카타는 마음이 놓인 듯 그제야 활짝 표정을 풀었다.

 

“그래도, 혼자 두지는 마라.”

 

긴토키가 시선을 돌리며 작게 말하자, 히지카타는 입술을 깨물며 웃음을 참았다. 그는 대답 대신, 긴토키의 손을 잡아끌었다.

 

“어어? 어디 가는데?!”

 

긴토키의 물음에도 히지카타는 그의 손을 잡은 채 말 없이 인파를 뚫고 지나갔다.

 

 

벌써 사람들이 많이 몰려있었다. 히지카타는 그 곳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여긴 어딘데?”

“…아, 시작한다.”

“응?”

 

피유우-, 펑-.

긴토키가 주위를 채 살피기도 전에 커다란 폭발음이 그의 귀를 울렸다. 곧, 하늘에 예쁜 불꽃이 피어올랐다.

 

 

“이거, 보고 싶었어. 너랑 같이.”

 

히지카타는 긴토키의 손을 꼭 잡으며 담담하게 말했다. 긴토키는 고개를 돌려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연이어 터지는 불꽃을 바라보는 그의 얼굴 위로 불빛이 비추어졌다. 그것이 퍽, 설렜다. 긴토키는 떨리는 미소를 지으며 시선을 하늘로 옮겼다.

 

히지카타는 맞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긴토키도 놓지 않을 것처럼, 꼭 깍지를 끼었다.

“같이 있게 해줘서, 고마워.”

“나야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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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 없이 나타나는 건 비 뿐만이 아니다.

WR. 고은

 

 

 

 

 

“마지막으로 날씨를 전해드리면서 마치겠습니다. 케츠노 아나?”

“네, 케츠노 아나운서입니다. 현재 에도 곳곳에 벚꽃이 피기 시작했는데요, 이번 주 내에 만개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하, 지, 만! 호사다마라고 하죠? 안타깝게도 비가 내린다고 합니다. 언제 올지는 몰라요? 모쪼록 잘 대비하시길 바래요. 특히, 거기! 업무 때문에 다크서클이 내려앉은 당신! 곧 썩어가는 폐품마냥 하품하는 당신! 언제 올지 모르는 건 비 뿐만이 아니랍니다! 우산을 꼭 챙기지 않으면 큰일 날지도? 그럼 저는 이만!”

 

 

“얼레? 저거 완전 히지카타 씨 아닙니까? 썩어가는 폐품, 히지카타 씨?”

티비를 보던 오키타는 손으로 히지카타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 옆에서 푹 꺼진 눈을 겨우 뜨며 하품하던 히지카타는 곧 입을 다물었다.

“아아. 대비는 늘 하고 있다, 아나운서 양반. 양이지사 놈들을 베어버릴 대비라면 말이야.”

“헤에, 글쎄. 지금은 꼬질꼬질하게 때 묻은 빨랫감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데요. 냄새난다구요?”

오키타는 코를 쥐며 어디서 가져온 건지 모를 스프레이를 뿌렸다.

 

“아악, 눈! 네놈, 그거 살충제 아니냐!”

“에-, 해충은 박멸해야죠. 죽어, 히지카타.”

히지카타는 오키타가 뿌리는 스프레이를 막으려 손을 마구 휘저었다.

“어이, 소고. 그만해라. 안 그래도 썩어가는 쓰레기에 스프레이를 뿌리면 불난다고?”

복도에서 히지카타와 오키타를 본 곤도는 방으로 들어와 오키타를 제지했다. 그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행동을 멈추었다.

 


“…곤도 씨. 그거 결국 내가 쓰레기라는 소리잖아.”

“하하하하. 그런가. 아무튼, 너도 좀 쉬엄쉬엄 해라. 가끔은 네 몸도 좀 보살피라고.”

“이게 다 당신들이 말썽을 피워놓으니까 생기는 일이잖아! 꼭 내가 일부러 일을 찾아서 하는 것처럼 말하는데, 워커홀릭 같은 거 아니거든?!”

“그래그래, 토시. 알겠다고. 그런 의미에서 대원들하고 벚꽃 구경이라도 가려는데, 어떠냐?”


“하아? 미안하지만 난 됐수다. 그 시간에 차라리 잠을 자겠어.”

“그러지 말고, 토시. 기분전환도 할 겸 말이야.”

“그래요, 히지카타 씨. 진짜 썩어 뒈지고 싶습니까? 그러면 나야 좋지만.”

“아, 그래. 썩어 뒈지고 싶으니까. 한 발자국도 못나가겠다고, 지금.”

“흐음, 그러냐. 알겠다. 그러면 서류는 그만 보고 오늘만큼은 쉬어라.”

 

곤도는 히지카타의 어깨를 두드렸다. 히지카타는 그것이 기운 내라는 의미처럼 느껴졌다. 그는 곤도와 오키타가 나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빨리 들어가 눕고 싶다고 간절하게 생각했다.

 

 

잠시 뒤, 둔영 마당이 소란스러워졌다. 대원들이 신에 겨워 떠드는 소리가 방 안으로 파고들었다.

 

“후우, 신났군.”

그는 얼굴을 찌푸리더니 방문에서 돌아누웠다. 그래, 빨리 가라. 그는 속으로 생각하며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곧 그들이 나간 건지, 그가 잠에 빠진 건지 바깥소리가 아득해졌다.

 

 

 

“세상모르고 자는군.”

말하는 낮은 목소리에 옅게 웃음이 배었다. 언제부터 와 있던 건지, 타카스기는 히지카타의 옆에 앉아있었다. 그는 제 품에서 곰방대를 꺼내들었다. 사락, 옷감끼리 스치는 소리가 가볍게 귓가에 맴돌았다. 그 때, 그의 손목이 붙잡혔다.

“자는 사람 옆에서 피울 셈이냐.”


히지카타였다. 그는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고 고갤 돌려 타카스기를 바라보았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그가 보였다.


“깼군. 나 때문인가.”

“그렇다고 하면, 가려고?”

히지카타는 타카스기를 향해 씩 웃어보였다. 그 모습에, 붙잡힌 손목을 내리며 타카스기는 작게 입 꼬리를 올렸다.


“글쎄. 가길 바라는 건가.”

“그게 왜 그렇게 흘러가는 건데?!”

“흐응?”

타카스기의 말에 히지카타는 얼른 일어나 그와 시선을 맞추었다. 그러자 타카스기는 눈썹을 치켜세우며 그를 바라보았다.

“뭐, 뭐.”

“대답은?”

“아니지, 당연히.”

그제야 타카스기는 만족한 듯 표정을 풀었다. 히지카타도 덩달아 표정이 풀어졌다.

“언제부터 온 거냐.”

“글쎄.”

“위험하다. 네 신분은 알고 들어온 거냐?”

“흐음. 내 신분을 알고도 만나는 넌. 위험하지 않은가?”

타카스기는 눈을 가늘게 뜨며 놀리는 투로 말했다.

“그거야…. 아무튼, 사람들이 언제 들어올지 몰라. 나가지.”

 

히지카타는 눈을 슬쩍 피하더니, 이불을 걷고 서둘러 일어나려 했다. 하지만, 이번엔 타카스기가 그의 손목을 붙잡았다.

 

“나는 여기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만.”

 

그러더니 그는 히지카타를 제게 끌어당겼다. 잠이 깨긴 했지만 몽롱함이 가시지 않았던 히지카타는 힘을 줄 새도 없이, 타카스기의 품에 안겨버렸다.

 

“읏! 무슨 짓이야?!”

당황해서 목소리가 커진 히지카타는 그의 팔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타카스기는 다른 한 팔로 그의 배를 감싸 꼭 끌어안았다.

 

“꼭 싫은 것처럼 구는 군.”

 

타카스기는 제 입술을 히지카타의 목에 갖다 대었다. 그리고 그 위로 입술을 달싹였다. 그 덕에 히지카타는 온 신경이 곤두섰다.

 

“으읏, 그런 건. 흐으.”

“그런 건?”

“흐읍, 거기에 입술, 대고, 으응. 말하짓, 마…흐응….”


타카스기가 살짝 고개를 돌리자, 새빨개진 귀와 입술을 깨물며 제 숨소릴 막는 히지카타가 보였다. 그것이 못내 사랑스러운 양, 그는 웃음을 터뜨렸다.

 

“뭐가 웃기다고 웃어?!”

“귀여워서.”

“아앙?!”

“…”

 

타카스기는 대답이 없었다. 히지카타는 무슨 일인가 싶어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그와 눈이 마주쳤다. 타카스기는 피하지 않고 지긋이 바라보았다. 짧은 순간, 히지카타는 그 눈에 사로잡힌 기분이 들었다. 아차, 싶은 그는 멍해진 제 입을 다물려고 했다.

 

“흡…!”

 

그의 입을 막은 것은 타카스기였다. 그는 히지카타에게 입을 맞추며 한 손으로 그의 머리를 감쌌다. 갑작스레 숨이 막힌 히지카타는 벌어지는 입술 사이로 깊게 숨을 뱉었다. 그리고는 진정을 한 것처럼, 커다래진 눈을 감으며 타카스기의 옷자락을 꼭 잡았다.

 

 

“흐응….”

입술을 떼자 히지카타가 얇게 신음을 흘렸다. 그는 타카스기에게 기댔다. 그의 심장이 뛰는 소리가 들렸다.

 

“사랑한다.”

한 글자, 한 글자에 그의 심장 소리가 더욱 커졌다. 그 소리가 온통 저를 가득 채워서, 되려 제 심장이 더욱 쿵쿵대는 히지카타였다.

 

 

“이제 정말 올 것 같군.”

타카스기는 슬며시 제게서 히지카타를 떼어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히지카타는 이미 방문 앞에 선 타카스기의 등 뒤로 다가갔다.

 

“가는 거냐.”

“그래.”

“…타카스기.”

 

한 발 내딛으려는 타카스기를, 히지카타는 불러 세웠다. 그리고 한 발짝 다가가 그를 껴안았다.

 

“싫어한다는, 그런 게 아냐. 사랑한다, 내가 더.”

 

그를 감싼 팔에서 심장이 뛰는 울림이 전해졌다. 타카스기는 조용히 손을 올려 그의 손을 감쌌다. 꼭 쥔 손에서 따뜻함이 퍼졌다.

 

이제는 정말 보내야할 때였다. 히지카타는 아쉬운 듯 천천히 제 팔을 풀었다. 타카스기는 방문을 열었다.

언제 온 건지,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 냄새와 함께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땅은 이미 젖어있었다. 그 위를 흐르는 빗물을 타고 벚꽃이 춤을 추었다.

 

“비가 꽤 내렸나보군.”

타카스기가 중얼거렸다. 그 사이, 히지카타는 우산을 그에게 건넸다.

“가져가라.”

그는 그것을 받아들 것처럼 팔을 뻗었다. 그러나 그의 손은 우산을 지나쳐 히지카타를 끌어안았다.

“고맙다. 돌려주러 오마.”

 

 

조용히 귀에 속삭였던 타카스기는, 붙잡을 새도 없이 그를 떠났다. 히지카타는 멍하니 그가 있던 자리를, 또 그가 지나간 자리를 내다보았다. 하나하나 온기가 남아있는 듯 했다.

 

 

“아나운서 말이 맞군.”

약속 없이 찾아와, 기약도 하지 않고 떠나는 것이. 비도, 너도, 그리고 우리도.

 

쉬이-, 바람이 한 번 불었다. 그 덕에 꽃잎이 흩날렸다. 팔랑이며 날갯짓 하는 나비처럼, 바람을 탄 것처럼 자유로이. 바깥을 흐릿한 풍경 속, 저들만이 유난히도 분홍빛을 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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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이란 이름 아래

긴수 전력 60분

WR. 고은

 

 

 

 

 

어이, 타카스기. 네놈이 나 보다 먼저 죽는 건 사양이다.

누가 할 소리. 네 시체 따위 볼 일 없게 해라.

 

등 뒤로 오갔던 그 말들이 왜 갑자기 생각이 난 건지. 이 상황에서 왜 그 날이 다시 떠오른 건지.

 

 


“여어, 타카스기군. 오랜만이다?”

“이런 상황에서 잘도 인사하는군.”

“이런 상황이니까 만난 거잖아? 너하고 나.”

 

우리는 조직에서 함께 길러졌고, 각기 갈라졌다. 그리고 세력을 키우고 성장했다. 백야차라는 이름으로, 귀병대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곳도 달랐고 취급하는 사업도 달랐다. 해서, 다시는 만나지 않을 줄 알았다.

 

“너하고 손을 잡다니, 희대의 실수다.”

“에, 그거 긴상을 두고 하는 말입니까?”

“너 아니면 누구겠냐. 방해다. 네 놈은 뒤에서 떡이나 받아먹어.”

“너야 말로 우유나 마시고 있지 그러냐? 몇 년이 지나도 그대로라니. 영양부족은 아닐까나?”

다치지 말란 얘기다.”

“응?”

 

우리가 너와 손을 잡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처음에는 놀랐고 다음으론 기뻤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무서웠다. 네가 위험해질까봐, 네가 이 일로 죽어버릴까봐.

 

“타카스기.”

“왜.”

“나, 이제 어린애 아니라고?”

“뭐?”

“그렇게 걱정하는 얼굴, 하지 말라는 거야. 제 앞가림은 하니까.”

“하아? 꽤 자신만만하군.”

“네가 하는 걸, 내가 못할 것도 없지.”

긴토키, 기억나나.”

“뭐가?”

“우리가 조직에서 나왔던 날.”

“아아, 기억하지.”

“다시 한 번 말하지. 난 아직도 네 놈 송장 따위 보는 건 사양이다.”

“…”

“그러니까 살아라. 살아 돌아오면. 할 말, 있으니까. 반드시 살아남아라.”

 

다신 만나지 못할 줄 알았다. 그래서 말하지 못했다. 나만 숨기면 될 일이었으니까. 나만 입 다물고 아무렇지 않은 척 하면, 평소처럼 지내고, 평소처럼 웃고, 아무 눈물 흘리지 않고도 헤어질 수 있으니까. 이대로 잊히겠지, 이대로 묻히겠지. 갈라진 후에도 되살아나는 감정을, 기억을 억지로 짓눌렀다. 그러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운명은 그리 간단하진 않은 모양이었다. 우리는 다시 만났고, 다시 동료로서 등을 맡겼다. 그렇다면 더 이상 숨길 이유가 없다. 나는 너를 믿고, 너는 나를 믿으니. 내가 이 믿음에 기대지 못할 이유가 없다. 여기서 네 손을 잡았으니, 다시는 놓지 않을 테다. 두 번 다시 헤어지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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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이 유독 붉을 때 생길 일을 조심하라.

즈라른 전력 60분 연성

 WR. 고은

 


 

 [지각도 습관이다] 후편.




“긴토키 자식, 또 지각이군.”

 

이제 카츠라 입에 긴토키의 지각이 붙어버린 듯 했다. 카츠라는 한숨을 내쉬었다. 대체 뭘 하느라 매일 이렇게 늦는 건지 그는 또 긴토키 걱정에 빠졌다.

 

“너, 네가 어째서…. 으윽.”

긴토키 앞으로 검은 정장 하나가 쓰러졌다. 그 남자와 마찬가지로, 긴토키의 주변에는 사내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긴토키는 고갤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제 제대로 서 있는 사람은 저 뿐인 것 같았다.

 

“호오. 이게 무슨 일인가, 긴토키.”

 

낮은 음성이 그가 있는 창고 안에 울려 퍼졌다. 그는 뒤를 돌아보았다.

 

“아, 도련님 납셨군. 어디 갔다 이제 오시나?”

“내 안부를 묻기엔 네놈 상태가 다 불쌍하군.”

 

그는 타카스기였다. 창고 문을 뒤로 하고 천천히 긴토키에게 다가온 타카스기는 한껏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그의 말대로, 긴토키는 이제 곧 쓰러져도 무방할 만큼 피투성이였다. 긴토키는 가쁜 숨을 내쉬면서도 씩 웃어보였다.


“이거? 네놈이 끌고 다니는 아저씨들하고 한판 놀아준 거지.”

“그래서, 타깃은?”

“타깃? 알까 보냐. 난 사람 죽이는 거, 안하거든.”

“뭐?”

“지금까지 받은 타깃들, 살아있다는 말이지. 그리고 마지막 타깃도.”

“하, 웃기지도 않는군.”

 

타카스기는 긴토키의 멱살을 잡았다. 그리고는 바닥에 내팽개치더니 그의 목을 발로 한껏 지르밟았다.

 

“네가, 언제부터. 더러운 오물에서 살던 놈이, 언제부터 고고한 척이야.”

“으윽. 긴상은, 말야. 켁, 커흡. 사람 죽이지 않기로. 약속, 했거든.”

“네놈은 나와의 약속만 유효하다고. 아니면 잊은 건가? 그렇다면 잊게 해주지. 네놈 삶의 고통도, 네가 사랑하는 그 놈 기억에서도.”

 

타카스기는 발에 무게를 실어 긴토키의 목을 더욱 짓눌렀다. 덕분에 긴토키의 얼굴은 새하얘졌다가 푸르게 변했다. 그는 한 팔로 타카스기의 발을 떼어 내려 했지만 되려 힘이 더 들어갔다. 긴토키는 허우적거리며 숨을 제대로 뱉어내지 못했다. 그의 다른 손은 애타게 제가 떨어뜨린 검을 찾고 있었다.

 

“아, 그 양이지사는 걱정 말아라. 내가 대신 잘 돌봐 줄 테니까 말이야. 네놈 대용품으로도 괜찮을, 커윽.”

 

타카스기의 배에 은색으로 빛나는 검이 관통했다. 그 검을 타고 그의 피가 뚝뚝, 긴토키의 팔에 흘렀다.

 

“그 놈을 돌봐 줄 사람은 나다. 내가 지켜.”

“너, 이 자식….”

 

긴토키는 잡은 검을 비틀었다. 그러자 타카스기가 피를 토했다. 덕분에 그 피가 고스란히 제 위로 쏟아져 내렸다. 그가 검을 뽑자, 타카스기는 긴토키 위로 쓰러졌다.

 

“하….”

 

긴토키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갈 수 있다. 이제, 제 시간에 맞춰 갈 수 있다. 그는 생각했다.

 

“아니, 네놈은…. 절대 못가.”


긴토키는 제 귓가에 퍼지는 타카스기의 목소리와, 옆구리에서 파고든 칼날이 동시에 겹쳐졌다. 긴토키는 제대로 숨을 쉬지 못했다. 역류하는 피와 함께 목이 막히는 기분이었다. 시야가 자꾸만 흐릿해졌다. 눈이 자꾸만 감겼다.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가야했다. 저를 기다리는 이에게로. 그의 눈에 열린 창고 문으로 벌써 석양이 지는 것이 보였다.

 

즈라가 많이 기다릴 텐데. 바보 같은 놈이라 미련하게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을 텐데. 움직여. 움직여라, 제발.

 

 

새빨갛게 불타는 저녁의 햇빛이 카츠라는 괜히 무서웠다. 꼭 짙게 흘린 피 같았다. 벌써 몇 시간이나 지났다. 아무리 늦어도 그는 이 만큼 늦는 사람이 아니었다. 게다가 약속까지 했다. 늦지 않겠다고. 이제 다 끝났다고. 대체 뭐가 끝났다는 것일까. 평소와는 다른 불안함이 그를 엄습했다.

“대체 어떻게 된 거냐, 긴토키….”

카츠라는 다시금 창밖을 바라보았다. 붉은 노을이 점점 흩어지는 것이 보였다.


아무 일이 없다면, 빨리 와라. 긴토키. 오늘만큼은,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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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각도 습관이다

WR. 고은

즈라른 전력 60분 연성

 




“긴토키 자식, 또 지각이군.”

 

카츠라는 조금 짜증이 일었다. 그는 늘 제 때 나타났던 적이 없었다. 물론 한두 시간이나 기다리게 하진 않았다. 하지만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매번 드는 건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었다.

그는 손목시계를 보다가 행인들 보기를 번갈아했다. 뒤에서 누가 오는지 모를 만큼 온 신경을 기다리는 데에 쏟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 뒤에 있던 누군가가 와락, 그를 안았을 때, 카츠라는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렸다. 그 덕에 몸의 중심이 뒤로 쏠려 제가 안기는 꼴이 되었다. 그는 고개를 살짝 들어 저를 안은 이를 확인했다. 긴토키였다.

 

“즈라, 많이 기다렸어?”

“즈라가 아니다, 카츠라다. 이러 놓게.”

“흐응, 매정하게 구는 거야?”

“자네, 내가 누누이 말하지 않았나. 지각 좀 하지 말라고! 어떻게 한번을”

“미안해, 기다리게 해서.”

 

늘 그를 기다리게 하는 자신이 미웠다. 늘 미안하단 말만 하는 자신이 한심했다. 그런 자신을 기다려주는 그가 고마웠다. 지금처럼 짜증을 내어도, 그게 자신을 걱정했기에 안심하는 소리임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에게 더욱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긴토키는 카츠라를 더 세게 품에 껴안았다.

 

“…자넨 항상 이런 식이지.”

“이런 내가 좋은 거잖아.”

“칫, 말만 잘하는 놈. 날 언제까지 기다리게 할 셈인가.”

“오래 안 걸릴 거야. 이제 곧 끝나니까.”

“응? 그게 무슨 말인가?”

“아냐. 그러니까, 매일 지각 안하도록 연습하고 있다고. 그거야, 그거.”

“어째 웃는 게 이상한 것 같다만. 그럼, 약속하는 거다.”

“응, 약속.”

 

긴토키는 부드럽게 말하며 제 얼굴을 카츠라의 목에 파묻었다. 그의 낮은 음성이 카츠라를 깊이 울렸다.

 

 

 

지이잉-.

긴토키의 주머니에서 핸드폰이 울렸다.

[다음 타깃은 양이지사 카츠라다. 이번이 마지막이니까, 반드시 처리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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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카긴] 보고싶었어.

2016. 7. 13. 03:47 from 은혼

 

 

 

 

보고싶었어.

꼬요님께.

WR. 고은

 

 

 

 

“어이, 타카스기.”

긴토키의 목소리가 들린다.

“일어나, 타카스기.”

꿈인가. 아득하게 들린다.

“일어나, 일어나라고! 제길.”

또 긴토키가 말한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 왜지. 아까는 분명 싸우는 중이었다. 피비린내도 나지 않는다. 전장은 아닌데, 그럼 여긴 어디지?

 

“어이, 긴토키! 그만 하게. 그러다 영영 못 돌아오면 어떡하나!”

이번엔 즈라 목소리다.

“그래, 킨토키. 자네도 쉬어야 한다네. 어서.”

이번엔 타츠마가 긴토키에게 말한다. 그래, 긴토키. 네가 쉬어야 한다고. 누굴 걱정하는거야.

“너희들 먼저 들어가. 조금만 더 보다 들어갈테니까.”

곧 두 사람의 발자국 소리가 멀어진다. 즈라하고 타츠마가 나간 것 같다.

 


“어이, 타카스기. 죽지 말라고 했잖아. 부탁했잖아.”

긴토키가 조용히 중얼거린다. 목소리가 좋지 않다. 꾹 참고 말하는 것 같은데, 녀석. 대체 내가 얼마나 망가졌길래 다들 그러는 거지.

 

아, 뭔가 떨어진다. 물 같은 게. 자꾸만 떨어진다. 뭐지, 비 냄새는 안 나는데.

“타카스기, 죽어야 하는 건 나다. 네가 죽어선 안 돼. 네가 죽으면….”

아, 긴토키였구나. 목소리에 눈물이 가득하다. 안되는데, 저렇게 혼자 두면. 일어나야 해. 일어나야 한다고. 움직여, 눈 떠. 제발 일어나, 이 몸뚱아리야.

 

 

“일어났다.”

“응?”

“일어났다고, 바보야.”

타카스기는 긴토키를 보았다. 그는 눈물범벅이었다. 타카스기는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려 그의 뺨에 가져다대었다. 뜨겁게 달아오른 뺨이 손바닥으로 느껴졌다.


“내가 죽으면 어떻게 되는데.”

“…안 돼.”

“왜?”

“보고 싶으니까. 계속 보고 싶을 거니까.”

타카스기는 작게 웃어보였다.

“그럼, 울지 마.”

“…울긴 누가 울었다고.”

“바보. 얼굴에도, 팔에도 다 눈물투성이거든.”

 

긴토키는 아닌 척, 옷깃으로 눈물을 훔쳤다. 그 모습에 타카스기는 조그맣게 소리 내어 웃었다.

“보고싶었어.”

그제야 긴토키도 눈물을 멈추었다. 그리고 타카스기를 따라 작게, 웃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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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의 절정은 불꽃놀이

둘기님께.

WR. 고은

 

 

 

 

“유카타, 꼭이야!”

 

그렇게 당부하고 헤어진 지 1시간 째. 오키타는 문 앞을 서성였다. 이렇게 입어도 될까, 역시 다른 게 나은가 하면서 다시 거울을 보는 그였다. 대원들은 그저 홀린 듯 그 모습을 좇았다. 그들이 함께 지낸 이래 그가 저리도 고민하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심지어 눈에 뻔히 보일만큼.

“어이, 소고. 그 정도면 됐다. 그러다 늦겠어.”

보다 못한 히지카타가 한마디 던졌다. 그 말을 듣더니 오키타는 동작을 멈추었다.

“…그렇죠? 고마워요, 히지카타씨.”

“어?”

그가, 히지카타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이것 또한 좀처럼 없는 일이었다. 상황을 지켜보던 대원들은 놀라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역시, 당신 충고는 사양이야. 죽어, 히지카타.”

오키타는 어디서 꺼냈는지 모를 대포를 히지카타에게 쏴주고는 밖으로 나가버렸다.

 

 

멀리서 오키타가 보였다. 카구라는 그를 발견했으나 모른 척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면서 오나, 안오나 흘끗흘끗 그의 모습을 확인했다.

“잠시만요.”

한 무리가 카구라의 앞으로 지나가려했다. 그녀는 주춤하며 뒷걸음을 쳤다. 그들이 지나가고, 다시 오키타가 오던 곳을 돌아보는데, 그는 없었다. 시야에서 놓쳐버린 그를 찾으려 이리저리 둘러보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어이, 누구 찾냐.”

예의 그 목소리가 사람들 속에서 들렸다. 카구라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가 서 있었다.

“너…. 왜 이렇게 늦냐, 해!”

“안 늦었거든. 네가 못 찾은 거지.”

“쳇. 유카타, 입었네?”

“어? 어, 뭐. 가자.”

카구라는 오키타가 급하게 말을 돌린다고 생각했다. 부끄러운 모양이구나, 그렇게 생각하니 웃음이 났다. 그녀는 그 웃음을 감추지 않고 그의 옆으로 따라갔다.

 

 

펑. 퍼엉-.

“와아. 이쁘다, 해.”

축제의 흥이 고조를 달했고, 모두가 한데 모여 불꽃놀이를 구경했다. 그 속에서 카구라는 마냥 신기한듯, 황홀한 듯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오키타는 옆에서 푹 빠져든 카구라를 한번 보더니 방금 터진 불꽃으로 수놓아진 하늘을 바라보았다.

“흐음? 저게 어디가 이쁘냐. 꼭 사람 베었을 때 솟는 피 같은데.”

“으으, 이 사디스트! 낭만도, 분위기도 모르냐, 해!”

“낭만이라…. 낭만은, 여기 있어.”


그는 고개를 숙이더니, 카구라의 볼에 입을 맞추었다. 갑자기 다가온 따뜻한 촉감에 카구라는 두 눈이 커다래졌다. 그녀는 몸이 굳은 것처럼 고개를 돌리지도, 손가락을 까딱하지도 못했다. 

오키타는 입술을 떼고 카구라에게 시선을 맞추었다. 부끄러운건지, 제게 시선을 주지 않는 카구라에게 마냥 웃음이 났다.

“너, 볼 빨개졌다.”


정말 그랬다. 그가 입을 맞춘 자리에 마치 꽃이 피듯, 뺨이 불그스름하게 번졌다. 카구라는 여전히 아무 말도 못하고 펑펑 터지는 불꽃에 시선을 고정했다.

오키타는 사랑스럽다는 웃음을 띠며 조심스레 그녀의 손을 잡았다. 조금 움찔거리더니 카구라도 그의 손에 깍지를 꼈다. 마치 하늘에 쏘아올린 불꽃이 퍼지는 것처럼, 두 사람의 얼굴에 행복이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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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하늘, 흰 연기.

타카시님께.

WR. 고은.

 

 

 

 

 

끼이익.

등 너머로 철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얼마나 오래된 건지, 녹슨 소리가 귀를 긁었다. 연이어 슬쩍슬쩍 바닥을 끄는 소리가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웬 연긴가 했더니, 네놈이냐.”

모퉁이에서 목소리가 들려와 고갤 돌리니, 타카스기였다.

“이 시간에 누가 왔나 했더니, 너냐.”

그는 가볍게 말을 무시하고 내 쪽으로 왔다.


“지금 수업시간 아니냐?”

“그래서?”

“수업 이탈 50점, 옥상 출입 30점, 교내 흡연 100점.”

“꼴에 선도부장이라고. 그러는 너도 마찬가지잖아?”

“난 예외지.”

“허? 왜 예왼데?”


그는 묻는 말에 대답은 않고 한 발자국 더 가까이 다가왔다. 당황스러운 나머지 뒷걸음이 절로 쳐졌다.

“아아? 뭐, 뭐야?”

천천히, 또 한 발자국 다가오는 타카스기에게 나는 또 한 발자국 뒷걸음을 쳤다. 툭, 등에 뭔가 부딪히길래 돌아보니 벽이었다. 이제 발 끝 바로 앞에 그가 있었다.

“왜냐면,”


그는 내 입에 물려있던 담배를 빼앗고는 그대로 입을 맞추었다. 부드러운 그 느낌에, 그리고 갑작스러운 이 순간에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그가 입을 벌리는 동시에 내 입이 벌려졌다. 그 사이로 그가 슬며시 안쪽을 훑었다. 순간 입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올 것 같아 입을 떼려 했더니, 다른 손으로 내 뒷목을 끌어당겼다. 이번에 그는 깊숙하게 파고들었다.

 

 

“후.”

“하아, 하읍. 뭔데, 갑자기?”

“담배. 피고 싶으니까.”

그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내가 담배냐는 내 말을 또 무시하더니 그는 담배가 들린 제 손을 쳐다보았다.

“아, 다 탔네.”

“…그거 막 꺼낸 건데.”

“푸흡.”

그는 그렇게 짧게 실소를 터트리더니, 이내 소릴 내며 활짝 웃었다.


“아? 왜 웃는데?!”

“하아, 그냥. 하나 줘.”

그는 간신히 웃음을 멈추는 양을 하고는 손을 내밀었다.

“이상한 놈.”

나는 그에게 한 개비를 건넸고, 다른 하나를 꺼내 내 입에도 물었다. 그는 그것을 입에 물더니 또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었다.

“…또 뭐?!”


“불.”

그는 내 담배 끝에 불을 붙여주었다. 제 것에도 붙이더니 난간으로 걸어나갔다. 그가 지나가는 자리마다 흰 연기가 따라 피었다. 그리고 나도 그 연기를 따라 드리워진 그림자 밖으로 나왔다.


그는 옆에서 기척을 느끼고는 고갤 돌렸다. 나와 눈이 마주친 것도 잠시, 다시 바깥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면서 생긋 웃는 것이다. 또 심장이 빨리 뛰었다. 방금 전 일이 생각나 나는 얼른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더럽게 파란 하늘이구만. 눈 시릴 만큼 파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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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에 목도리를 매는 사람

은혼 심야 전력 60분 연성

WR. 고

 

 

 

 

 이른 저녁이었다. 히지카타는 오키타의 방 앞에서 잠시 머뭇거렸다.

 

 

“뭡니까, 히지카타씨.”

 

 

문이 닫혀있었음에도 제 기척을 느꼈는지, 너머에서 오키타의 목소리가 들렸다.

 

 

“소고, 휴가다.”

“에? 뭡니까, 갑자기.”

“나도 모른다. 곤도 씨가 내려준 거야.”

“헤에, 근데 왜 그걸 히지카타씨가 전해줍니까?”

“밖에 나갔어. 에도의 치안을 지킨다면서 말이야. 뭐, 보나마자 그 여자네 집으로 갔겠지만. 아무튼, 딱히 할 거 없으면 부슈에라도 갔다 오던가.”

“부슈?”

“너, 살던 곳은 정리해둬야 할 거 아냐. 이제 돌볼 사람도 없으니까. 간다.”

 

 

히지카타가 멀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듣고도 오키타는 꿈쩍하지 않았다. 부슈라는 말에 멍해진 것 같았다.

 

 

 

그 날, 오키타는 자는 내내 뒤척였다. 히지카타를 몇 구 째 베어내도 잠이 오질 않아서, 결국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슈라니, 사람 잠도 못 자게 말이지. 역시 히지카타 죽어.”

 

 

그는 방을 정리하고 조심스레 둔영을 나왔다. 온 풍경이 어슴푸레한 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는 문을 힐끗 돌아보더니 발걸음을 역으로 옮겼다.

 


 

부슈까지 가는데 이젠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천인들이 가져온 문명 덕일 터였다. 그는 기차역 내를 돌아보았다. 곧, 그가 타는 기차가 들어온다는 안내음이 들렸다. 그는 시선을 거두고 탈 곳으로 향했다.


기차가 달리는 사이, 바깥은 점점 환해졌다. 그의 마음처럼 밝아지고 있었다. 고개를 돌리니 그리운 풍경들이 지나갔다. 내릴 역에 가까워지는 것 같았다.

 

 


그가 내린 역은 막 에도로 떠날 때와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이곳까지 변해버렸나. 그는 짧게 혀를 차고는 발을 떼었다.

 

 

그것도 잠시, 그가 살던 집으로 향할수록 밭이며 개울이며 옛 정취들이 그를 맞이했다. 역시 시골은 시골인가, 아직까지 하나도 변하지 않은 걸 보니. 그는 입가에 웃음을 띠며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아침을 맞이하는 새소리가 그의 머리 위로 울렸다. 햇살은 따뜻하게 그가 가는 길을 비추었다. 이 익숙하고도 그리운 느낌에 그는 가슴이 뛰었다. 곧 있으면 나올 텐데. 


그가 그렇게 생각함과 동시에 그가 보고싶어했던 형체가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가려진 나무들 틈 사이로, 그가 누이와 함께 지냈던 그 집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냈다. 그 때의 시간들이, 이제 코 앞에 있었다.

 

 

마당부터 마루, 지붕, 울타리. 그 어느 하나 변한 것이 없었다. 누님께서 그동안 잘 가꿔오셨구나. 

그는 앞마당을 한 바퀴 돌아보다가 뒷마당도 가보고, 고갤 숙여 마룻바닥 밑도 한번 보면서 몇 년만에 만난 제 집에게 인사했다.

 

방 안으로 들어선 그는 크게 집 안을 돌아보았다. 여기도 곳곳이 누이의 손길로 가득했다. 이곳에 아무도 살지 않게 된 지 한참이나 지났을 텐데도 여전히 정갈하고 따뜻했다. 그것은 그의 누이의 성격과도 퍽 닮아서, 그는 자꾸만 미츠바를 생각했다.

 

제 방도 자신이 떠날 적 그대로였다. 지난 날 이리저리 널부러진 옷가지들 틈으로 놀던 제 모습이, 별 것 아닌 걸로 떼를 쓰던 제 모습이 그의 눈에 선하게 보였다. 그 시절이 떠올라 그는 괜스레 웃음이 지어졌다.

 

 

방안을 둘러보던 그는 서랍 위에 있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못 보던 것이었다. 흰 편지 봉투와, 빨간 목도리였다. 가까이서 보니, 그 위에 먼지가 조금 쌓여 있었다. 둔지 꽤 된 모양이었다. 그는 그 앞에 앉아 편지 봉투를 집어들었다

'오키타 소고에게, 미츠바가.'

 누이의 글씨였다. 오랜만에 보는. 정말 보고싶었던 누이의, 흔적.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그였다. 그런 그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는 입술을 깨물며 천천히, 찢어지지 않게 봉투를 뜯었다.

 

.

.

편지엔 온통 그에 대한 안부와 미안함으로 가득했다. 그가 없는 곳에서도 미츠바는 늘 그를 걱정하고 있었다. 마지막까지도 생일 축하한다며, 직접 찾아가 축하해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이 적혀있었다.

 

 

“누님이 미안할 게 뭐가 있다고. 더 죄송한 건, 저라구요…. 아아, 이러면 안 되는데. 글자가 지워지는데.”

 

톡, 톡. 눈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옅게 퍼졌다. 글자 위에도, 그의 얼굴 위에도 눈물투성이였다. 그는 손등으로 눈가를 마구 닦으며 편지를 서랍 위에 고이 올려두었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빨간 목도리를 제 품에 꼭 안으며 얼굴을 묻었다.

 

 

 

누님, 내 생일은 7월인데, 목도리가 뭐에요. 이 날씨에 목도릴 했다가는 엄청나게 땀을 흘릴 거라구요. 이 날씨에 목도릴 했다가는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만큼 얼굴이 망가진다구요. 이 날씨에 목도릴 했다가는, 내가 이렇게 울어버리고 만다구요. 이렇게 받기만 해서. 내가 이렇게 행복해해도 되는지 모르겠다구요. 그런데도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내가 아무것도 못해줘서. 미안해요. 고마워요, 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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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8일 오키타 소고 생일 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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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지긴] want, want you.

2016. 6. 29. 22:57 from 은혼

 

 

 

 

want, want you.

긴수 전력 60분 연성

WR. 고은

 

 

 

 

“어이, 배고파.”

“어쭈, 말이 짧아졌다? 다시 유아기로 돌아갈 셈이냐?”

“배고프다구.”

“그래서 뭐.”

“…칫. 나빠.”

 

그는 내게서 등을 돌려버렸다. 그러자 엉덩이에 달린 새하얀 꼬리가 보였다. 그 털뭉치는 마치 날 유혹하듯 살랑였다. 어디서 또 끼를 부릴려고. 삐친 척 하는 거 다 안다고. 너한테 내가 또 넘어갈 것 같냐!

 

 

“뭐 먹고 싶은데?”

 

 

안 넘어 갈 리가 없지. 이 쪼그만 녀석은 날 너무 잘 안다.

 

 

긴토키와 만난 건 몇 년 전이었다. 웬 아이가 집 앞에 쪼그려있길래 길을 잃었겠거니 싶어 경찰서에 가려고 했다. 그런데 한 발자국도 떼지 않는 것이다. 어디서 왔냐, 부모님은 누구냐 물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딱 한 번, “긴토키.” 라며 자신의 이름을 말했을 때 말고는. 결국 그를 우리 집으로 데리고 오기까지 알게 된 건 그의 이름과, 정체 모를 새하얀 꼬리와 귀였다.

 

 

꼬리와 귀라니. 세상에, 지금이 어느 시댄데 요괴 같은 게 있을까. 그런 허구 같은 게. 있었다. 여기, 눈앞에. 처음엔 강아지 털을 잔뜩 달고 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니면 누가 장난삼아 붙여놓은 것이라던가. 그래서 떼어내려고 털어도 보고 잡아당겨도 봤다. 하지만 떨어지기는 커녕 아이가 아픔과 공포에 질려 울어버리는 것이었다. 나중에 책을 찾아보니 ‘케모코’라고, 짐승인 아이라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반인반수잖아?

 

 

“히지카타.”

“뭐?”

“히- 지카타. 먹고 싶어.”

 

 

틀림없다. 녀석은 구미다. 구미와 인간이 섞인 거다. 그게 아니고선 대체 어떻게, 저렇게도 능숙하게 사람을 홀릴 수 있는 거야.

 

 

“너, 그런 말 어디서 배웠어.”

“히지카타가 알려줬잖아. ‘-싶냐’고 물을 떈 네가 원하는 걸 말하면 된다고.”

“그래도 그렇지, 히지카타는 먹는 게 아니야. 난 사람이라고.”

“사람은 먹으면 안 돼?”

“안 돼.”

“그럼 히지카타는 먹으면 안 돼?”

“절대 안 돼.”

 

 

단호하게 표정을 짓자, 그가 샐쭉 입을 내민다. 그러더니 그 예쁜 눈에 금방 눈물이 고이는 것이다. 아, 이런. 너무 심하게 말했나.

 

 

“후, 이리 와.”

 


그를 향해 양 팔을 벌렸다. 그러자 폭 뛰어와 안긴다. 이제는 제법 몸집이 커져서 한 손으로 안기엔 손이 부족했다. 다른 손으로 그의 등을 받쳐 안으니, 긴토키는 제 얼굴을 내게 묻으며 파고들었다. 그 탓에 그의 귀가 내 턱끝을 간질였다.

 

“이게 좋아. 이거 먹고 싶어.”

“이건 먹는 게 아니야. 이러고 싶을 땐, 안고 싶다고 하면 돼.”

“안고 싶어?”

“그래.”

“안고 싶어. 하지카타.”

 

 

그 말과 동시에 나를 더 꽉 안는 게 느껴졌다. 팔 힘이 세 봐야 얼마나 세겠느냐마는.

 

 

“너, 솔직히 말해봐. 이런 거 어디서 배웠어?”

“안 배웠어. 히지카타가 맨날 보는 거에서 이렇게 하던걸?”

“뭐? 내가 뭘 봤다고!”

“음, 살구색이 가득하고 신음소리가 나는”

“아아! 아니야. 전혀 없다고.”

“헤에, 그래?”

“그래.”

 

 

녀석이 또 꼬리를 살랑였다. 마치 먹고 싶었던 사탕을 받은 아이처럼, 행복하다는 듯이. 그러면 나는 그를 더 품에 끌어안는다. 마치 먹고 싶었던 사탕을 받은 아이처럼, 소중하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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