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에 목도리를 매는 사람

은혼 심야 전력 60분 연성

WR. 고

 

 

 

 

 이른 저녁이었다. 히지카타는 오키타의 방 앞에서 잠시 머뭇거렸다.

 

 

“뭡니까, 히지카타씨.”

 

 

문이 닫혀있었음에도 제 기척을 느꼈는지, 너머에서 오키타의 목소리가 들렸다.

 

 

“소고, 휴가다.”

“에? 뭡니까, 갑자기.”

“나도 모른다. 곤도 씨가 내려준 거야.”

“헤에, 근데 왜 그걸 히지카타씨가 전해줍니까?”

“밖에 나갔어. 에도의 치안을 지킨다면서 말이야. 뭐, 보나마자 그 여자네 집으로 갔겠지만. 아무튼, 딱히 할 거 없으면 부슈에라도 갔다 오던가.”

“부슈?”

“너, 살던 곳은 정리해둬야 할 거 아냐. 이제 돌볼 사람도 없으니까. 간다.”

 

 

히지카타가 멀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듣고도 오키타는 꿈쩍하지 않았다. 부슈라는 말에 멍해진 것 같았다.

 

 

 

그 날, 오키타는 자는 내내 뒤척였다. 히지카타를 몇 구 째 베어내도 잠이 오질 않아서, 결국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슈라니, 사람 잠도 못 자게 말이지. 역시 히지카타 죽어.”

 

 

그는 방을 정리하고 조심스레 둔영을 나왔다. 온 풍경이 어슴푸레한 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는 문을 힐끗 돌아보더니 발걸음을 역으로 옮겼다.

 


 

부슈까지 가는데 이젠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천인들이 가져온 문명 덕일 터였다. 그는 기차역 내를 돌아보았다. 곧, 그가 타는 기차가 들어온다는 안내음이 들렸다. 그는 시선을 거두고 탈 곳으로 향했다.


기차가 달리는 사이, 바깥은 점점 환해졌다. 그의 마음처럼 밝아지고 있었다. 고개를 돌리니 그리운 풍경들이 지나갔다. 내릴 역에 가까워지는 것 같았다.

 

 


그가 내린 역은 막 에도로 떠날 때와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이곳까지 변해버렸나. 그는 짧게 혀를 차고는 발을 떼었다.

 

 

그것도 잠시, 그가 살던 집으로 향할수록 밭이며 개울이며 옛 정취들이 그를 맞이했다. 역시 시골은 시골인가, 아직까지 하나도 변하지 않은 걸 보니. 그는 입가에 웃음을 띠며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아침을 맞이하는 새소리가 그의 머리 위로 울렸다. 햇살은 따뜻하게 그가 가는 길을 비추었다. 이 익숙하고도 그리운 느낌에 그는 가슴이 뛰었다. 곧 있으면 나올 텐데. 


그가 그렇게 생각함과 동시에 그가 보고싶어했던 형체가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가려진 나무들 틈 사이로, 그가 누이와 함께 지냈던 그 집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냈다. 그 때의 시간들이, 이제 코 앞에 있었다.

 

 

마당부터 마루, 지붕, 울타리. 그 어느 하나 변한 것이 없었다. 누님께서 그동안 잘 가꿔오셨구나. 

그는 앞마당을 한 바퀴 돌아보다가 뒷마당도 가보고, 고갤 숙여 마룻바닥 밑도 한번 보면서 몇 년만에 만난 제 집에게 인사했다.

 

방 안으로 들어선 그는 크게 집 안을 돌아보았다. 여기도 곳곳이 누이의 손길로 가득했다. 이곳에 아무도 살지 않게 된 지 한참이나 지났을 텐데도 여전히 정갈하고 따뜻했다. 그것은 그의 누이의 성격과도 퍽 닮아서, 그는 자꾸만 미츠바를 생각했다.

 

제 방도 자신이 떠날 적 그대로였다. 지난 날 이리저리 널부러진 옷가지들 틈으로 놀던 제 모습이, 별 것 아닌 걸로 떼를 쓰던 제 모습이 그의 눈에 선하게 보였다. 그 시절이 떠올라 그는 괜스레 웃음이 지어졌다.

 

 

방안을 둘러보던 그는 서랍 위에 있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못 보던 것이었다. 흰 편지 봉투와, 빨간 목도리였다. 가까이서 보니, 그 위에 먼지가 조금 쌓여 있었다. 둔지 꽤 된 모양이었다. 그는 그 앞에 앉아 편지 봉투를 집어들었다

'오키타 소고에게, 미츠바가.'

 누이의 글씨였다. 오랜만에 보는. 정말 보고싶었던 누이의, 흔적.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그였다. 그런 그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는 입술을 깨물며 천천히, 찢어지지 않게 봉투를 뜯었다.

 

.

.

편지엔 온통 그에 대한 안부와 미안함으로 가득했다. 그가 없는 곳에서도 미츠바는 늘 그를 걱정하고 있었다. 마지막까지도 생일 축하한다며, 직접 찾아가 축하해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이 적혀있었다.

 

 

“누님이 미안할 게 뭐가 있다고. 더 죄송한 건, 저라구요…. 아아, 이러면 안 되는데. 글자가 지워지는데.”

 

톡, 톡. 눈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옅게 퍼졌다. 글자 위에도, 그의 얼굴 위에도 눈물투성이였다. 그는 손등으로 눈가를 마구 닦으며 편지를 서랍 위에 고이 올려두었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빨간 목도리를 제 품에 꼭 안으며 얼굴을 묻었다.

 

 

 

누님, 내 생일은 7월인데, 목도리가 뭐에요. 이 날씨에 목도릴 했다가는 엄청나게 땀을 흘릴 거라구요. 이 날씨에 목도릴 했다가는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만큼 얼굴이 망가진다구요. 이 날씨에 목도릴 했다가는, 내가 이렇게 울어버리고 만다구요. 이렇게 받기만 해서. 내가 이렇게 행복해해도 되는지 모르겠다구요. 그런데도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내가 아무것도 못해줘서. 미안해요. 고마워요, 누님.






---

7월 8일 오키타 소고 생일 축하해.

Posted by 은후글쓴다 :

[히지긴] want, want you.

2016. 6. 29. 22:57 from 은혼

 

 

 

 

want, want you.

긴수 전력 60분 연성

WR. 고은

 

 

 

 

“어이, 배고파.”

“어쭈, 말이 짧아졌다? 다시 유아기로 돌아갈 셈이냐?”

“배고프다구.”

“그래서 뭐.”

“…칫. 나빠.”

 

그는 내게서 등을 돌려버렸다. 그러자 엉덩이에 달린 새하얀 꼬리가 보였다. 그 털뭉치는 마치 날 유혹하듯 살랑였다. 어디서 또 끼를 부릴려고. 삐친 척 하는 거 다 안다고. 너한테 내가 또 넘어갈 것 같냐!

 

 

“뭐 먹고 싶은데?”

 

 

안 넘어 갈 리가 없지. 이 쪼그만 녀석은 날 너무 잘 안다.

 

 

긴토키와 만난 건 몇 년 전이었다. 웬 아이가 집 앞에 쪼그려있길래 길을 잃었겠거니 싶어 경찰서에 가려고 했다. 그런데 한 발자국도 떼지 않는 것이다. 어디서 왔냐, 부모님은 누구냐 물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딱 한 번, “긴토키.” 라며 자신의 이름을 말했을 때 말고는. 결국 그를 우리 집으로 데리고 오기까지 알게 된 건 그의 이름과, 정체 모를 새하얀 꼬리와 귀였다.

 

 

꼬리와 귀라니. 세상에, 지금이 어느 시댄데 요괴 같은 게 있을까. 그런 허구 같은 게. 있었다. 여기, 눈앞에. 처음엔 강아지 털을 잔뜩 달고 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니면 누가 장난삼아 붙여놓은 것이라던가. 그래서 떼어내려고 털어도 보고 잡아당겨도 봤다. 하지만 떨어지기는 커녕 아이가 아픔과 공포에 질려 울어버리는 것이었다. 나중에 책을 찾아보니 ‘케모코’라고, 짐승인 아이라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반인반수잖아?

 

 

“히지카타.”

“뭐?”

“히- 지카타. 먹고 싶어.”

 

 

틀림없다. 녀석은 구미다. 구미와 인간이 섞인 거다. 그게 아니고선 대체 어떻게, 저렇게도 능숙하게 사람을 홀릴 수 있는 거야.

 

 

“너, 그런 말 어디서 배웠어.”

“히지카타가 알려줬잖아. ‘-싶냐’고 물을 떈 네가 원하는 걸 말하면 된다고.”

“그래도 그렇지, 히지카타는 먹는 게 아니야. 난 사람이라고.”

“사람은 먹으면 안 돼?”

“안 돼.”

“그럼 히지카타는 먹으면 안 돼?”

“절대 안 돼.”

 

 

단호하게 표정을 짓자, 그가 샐쭉 입을 내민다. 그러더니 그 예쁜 눈에 금방 눈물이 고이는 것이다. 아, 이런. 너무 심하게 말했나.

 

 

“후, 이리 와.”

 


그를 향해 양 팔을 벌렸다. 그러자 폭 뛰어와 안긴다. 이제는 제법 몸집이 커져서 한 손으로 안기엔 손이 부족했다. 다른 손으로 그의 등을 받쳐 안으니, 긴토키는 제 얼굴을 내게 묻으며 파고들었다. 그 탓에 그의 귀가 내 턱끝을 간질였다.

 

“이게 좋아. 이거 먹고 싶어.”

“이건 먹는 게 아니야. 이러고 싶을 땐, 안고 싶다고 하면 돼.”

“안고 싶어?”

“그래.”

“안고 싶어. 하지카타.”

 

 

그 말과 동시에 나를 더 꽉 안는 게 느껴졌다. 팔 힘이 세 봐야 얼마나 세겠느냐마는.

 

 

“너, 솔직히 말해봐. 이런 거 어디서 배웠어?”

“안 배웠어. 히지카타가 맨날 보는 거에서 이렇게 하던걸?”

“뭐? 내가 뭘 봤다고!”

“음, 살구색이 가득하고 신음소리가 나는”

“아아! 아니야. 전혀 없다고.”

“헤에, 그래?”

“그래.”

 

 

녀석이 또 꼬리를 살랑였다. 마치 먹고 싶었던 사탕을 받은 아이처럼, 행복하다는 듯이. 그러면 나는 그를 더 품에 끌어안는다. 마치 먹고 싶었던 사탕을 받은 아이처럼, 소중하다는 듯이.






---

Posted by 은후글쓴다 :

[타카츠라] 울어도 돼.

2016. 6. 26. 23:18 from 은혼

 

 

 

 

울어도 돼.

즈라른 전력 60분 연성

WR. 고은

 

 

 

 

캄캄한 밤 아래, 향락의 불빛으로 물든 이 곳. 하하호호 웃는 소리와 술에 취해 떠드는 소리, 가끔 만취객들이 싸우는 소리도 들린다.

 

 

“즈라코, 손님 들어가신다.”

“네.”

 

 

나는 화장을 조금 고치고 자세를 바로 잡았다. 매일매일 사람만 바뀌는 지겨운 일상. 또 누가 들어오려나.

 

 

잠시 뒤, 문이 열리고 다시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손님이 말을 걸 때까지 가만히 있어야한다는 규칙에 따라 나는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러나 방은 아무도 들어오지 않은 것처럼 조용했다.

 

 

그 적막이 이어지길 몇 분 째. 고갤 들어야하나 망설이던 순간이었다.

툭.

큰 꾸러미 하나가 눈 앞에 떨어졌다. 나는 그것을 곁눈질로 확인했다.

 

 

“내가 먼저 말하지 않으면 끝까지 그 자세로 있을 참이군.”

 

 

낮게 깔리는 목소리. 그 목소리가 귀에 울리고 심장을 울린다. 아, 그 사람이다.

 

 

“어서 들어오십시오, 유녀 즈라코입니다.”

“고개 들어. 누군지 확인 정도는 해도 된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타카스기님.”

 

 

한 발짝, 한 발짝. 그가 내게 오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조용히 그의 발끝을 응시했다. 그는 내 옆으로 와 앉았다. 그가 늘 피는 담배 향에 심장이 들뜬 듯 마구 뛰었다.

 

 

“생일 축하한다. 저건, 선물.”

 

 

낯선 단어에 신경이 돋았다. 생일. 내가 혼자가 되었을 때부터 생일 같은 건 챙겨본 적이 없었다. 챙겨주는 이도 없었고, 나 또한 챙길 만큼 여유가 있지도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던 걸까. 나조차도 잊어버렸던 내 생일인데.

 

 

고갤 들어 그의 눈을 마주보았다. 또, 그 웃음. 내가 당신께 빠져버렸던 그 웃음을 또 짓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그 웃음에 화답하며 그가 준 선물을 풀어보았다. 기모노였다.

 

 

“직접…. 직접 고르신 것이십니까?”

 

 

내 물음에 그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직접, 날 위해서. 이걸 고를 때까지 얼마나 고민을 했을까. 그 시간동안 얼마나 나를 생각했을까. 내 키, 체형, 취향 어느 하나 빼놓지 않고 딱 내게 맞는다. 대체 얼마나 나를 위했던 것일까. 아아,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느냐?”

“아닙니다.”

“즈라.”

“즈라가 아닙니다, 즈라코”

 

 

그의 손길이 내 눈가에 닿았다. 그리고 눈물을 훔쳐주었다. 그 따뜻하고도 다정한 손길이 그리워, 그만 눈물을 쏟아버렸다. 그의 모습이 잠시 흐릿해졌다가, 이내 캄캄해졌다. 그는 나를 껴안으며 머리를, 또 등을 토닥였다.

 

 

“울거라. 마음 놓고 울어도 된다.”

“타카스기님, 감사…. 감사합니다. 선물도, 축하도. 제게 와 주신 것도.”

 

 

 

 

그의 심장소리가 따뜻하게 들린다. 그의 목소리가 나를 감싼다. 그의 단단한 품이 나를 꼭 끌어안는다. 그의 시선은 오롯이 나만을 향한다. 아아, 이보다 더 행복할 수는 없으리라.






--- 즈라, 생일 축하해!

Posted by 은후글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