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타카] 생일 선물

2016. 8. 9. 23:29 from 은혼





생일 선물

WR. 고은




“긴상 왔다-.”

 

긴토키가 현관문을 닫고 복도를 지나쳐 안방 문 앞으로 오기까지, 집안에서는 아무런 기척도 나지 않았다.

 

“타카스기…?”

 

그는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탁자 위에 타카스기가 엎드려 누워 있었다. 긴토키는 안으로 들어와 그의 옆에 앉았다. 조심스레 얼굴을 들여다보니, 다행히 자고 있는 것 같았다.

 

“휴.”

“뭘 그렇게 한숨을 내쉬나.”

 

타카스기에게 별일이 없음을 확인한 그는 그제야 마음을 놓았다. 긴장한 몸을 풀으려 자세를 고쳐 앉는데, 살짝 눈을 뜬 타카스기가 그를 보고 있었다.

 

“아이고, 긴상 놀랬잖냐.”

“어디에 놀랐다는 거야. 언제 왔나.”

“방금 왔다. 많이 피곤했냐?”

“어어, 그냥.”

 

여전히 엎드린 채 졸린 눈으로 자신을 보는 타카스기의 머리를, 긴토키는 다정한 손길로 쓰다듬었다. 타카스기는 그것이 기분 좋은 듯 입가에 미소를 띄웠다.

 

“타카스기, 잠깐만.”

 

긴토키는 그렇게 말하더니 쓰다듬던 손을 타카스기의 어깨로 내려 제 팔에 감쌌다. 그러더니 다른 한 손으로 그를 제게로 끌어당겼다. 부드럽고 천천히, 저를 끌어안는 긴토키의 품이 단단했다. 타카스기는 아무 말 없이 그대로 안겼다.

 

“호오? 웬일로 별 저항이 없으십니다, 타카스기군?”

“해주기라도 바라는 거냐.”

“아니요-.”

 

그러더니 긴토키는 타카스기의 이마 위에 입을 맞추었다. 갑작스런 입맞춤에 타카스기는 움찔했다.

 

“어이, 오늘따라 왜 그러는 거냐. 피곤하다. 오늘은 안 돼.”

“에엑? 뭐가 안 된다는 겁니까? 긴상은 전혀 생각도 안했어요, 요 녀석아.”

“그럼 뭐야.”

 

저를 올려다보며 묻는 타카스기에, 긴토키는 무어라 말을 하려다 그대로 멈추어버렸다.

 

“음? 파리 들어간다.”

 

입도 다물지 않고 저를 바라보는 긴토키에게, 타카스기는 실없는 말을 하며 살짝 웃었다. 그 모습에 긴토키는 조용히 입을 다물며 그를 품에 꼭 안았다.

 

“사랑해, 타카스기.”

“…진짜 왜 그러냐, 너.”

“생일, 축하해.”

“…아,”

“몰랐었지? 또 까먹은 거지? 그럴 줄 알았어. 타카스기군을 챙겨주는 건 긴상 뿐이지?”

“하, 웃기는 소리. 챙길 필요가 없으니까 챙기지 않은 거다.”

“챙길 필요, 있어. 네가 태어났으니까. 오늘이 없었으면, 너도 없었을 거다. 그러면 널 사랑하는 나 또한 없어. 어떤 날 보다도, 네가 태어난 날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날일 거다.”

“…”

“다만, 생일인데도 선물도, 맛있는 밥도 못해줘서. 못나게도 이렇게 안아주는 것 밖에는 할 수 없어서. 그런 변변치 못한 놈이 네 애인이라서…”

 

말끝을 흐리는 긴토키로부터 살짝 몸을 뗀 타카스기는 다시금 그를 올려다 보았다. 그의 눈이 가득 담겼다.

 

“정정해야겠군. 이제부터 생일이라는 거, 챙겨야겠어. 네가 옆에 있을 동안은 말이다. 날 사랑하는 네가 없다면 내가 태어난 이유 따윈, 더 이상 중요하지 않으니. 생일 선물 같은 거, 필요 없다. 너만 있으면 되니까.”

“예쁘게 말도 잘하는걸, 타카스기군? 오냐, 이제부터 네가 죽고 내가 죽을 때까지 꼭 같이 생일, 맞이하자. 평생 옆에 있을 거니까.”

“…고맙다, 긴토키.”

“고맙긴. 나와 함께 있어줘서 내가 고맙다.”

 

타카스기는 긴토키의 품에 파고들었다. 그러자 나지막이 울리는 심장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가 너무도 따뜻하고 편안해서, 타카스기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등 위로, 저를 토닥이는 긴토키의 손길이 느껴졌다.

 

 

“생일 축하해, 타카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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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천사님.

WR. 고은

천사님 두 분께.

 

 

 

 

 

“엄마, 나도 저거 갖고 싶어.”

“응? 저게 갖고 싶어요?”

“네!”

 

아이의 말에 엄마는 손을 잡고 가게에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해맑게 웃으며 가게를 나서는 두 사람이, 긴토키의 옆을 스쳐지나갔다.

 

 

“엄마 최고!”

 

귀를 찌르는 목소리에 긴토키는 뒤를 돌아보았다. 아이가 아직 가격표도 안 뗀 인형을 품에 꼭 안은 채 제 엄마에게 엄지손가락을 추켜올리는 모습이 보였다. 이윽고 그들이 떠나자, 거리엔 긴토키 혼자 남았다. 그러나 그는 그들이 사라진 자리에 뭐라도 있는 것처럼 멍하니 서 있었다.

 

“…아, 파르페 먹고 싶다.”

 

그는 천천히 고갤 돌리더니, 다시 발걸음을 떼었다.

 

 

 

*

 

 

 

“나가. 꼴도 보기 싫다!”

 

타카스기는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았다. 얼마나 모질게 맞았으면, 입술이 다 터졌다. 말소리가 끝나기 무섭게, 마당에 쓰러진 그를 두고 방문은 거세게 닫혔다. 탁, 하는 소리가 그의 가슴 속을 빙빙 울렸다.

 

“….”

 

어느 새 바닥에 노을빛이 깔렸다. 멀찍이 떨어져 쑥덕이던 하인들도 떠나고, 여전히 분을 삭이지 못하던 아버지의 목소리도 사그라들었다. 그제야 타카스기는 정신을 차린 것처럼 고개를 들었다.

 

그는 천천히 일어났다. 여전히 아무런 말도, 표정도 없었다. 그는 옷을 탁탁 털어내더니, 망설임 없이 대문 밖을 나섰다.

 

 

 

*

 

 

 

언제 해가 져버린 건지, 주위는 온통 검푸르렀다. 타카스기는 제가 떠나 온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음울하기 짝이 없는 저 하늘이 저 마을을 물들였나보다. 애정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곳이니 그러고도 남았다. 무정한 공허가 그의 속을 파고들었다.

 

그는 자리에 털썩 앉더니, 풀밭 위로 누웠다. 보이는 건 푸르뎅뎅한 하늘이 반, 무성한 이파리들이 반. 저리 많은 이파리를 나게 할 수 있는 건 제 옆에 우뚝 선 저 커다란 벚나무뿐이리라.

 

지난 번 하인이 얘기해준걸 떠올려보면 그것은 제 나이보다도 오래된 나무였다. 한창 벚꽃이 만개할 때였다. 왜 이렇게 예쁘게 피는데 아무도 찾질 않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이 언덕을 오기에는 험하기도 하고, 꽁꽁 숨겨져 있어서 아무도 찾지 않는다고 한 것이 기억이 났다. ‘아무도 찾지 않는다.’ 라. 그 말을 곱씹을 때였다.

 

 

“어이, 꼬마.”

 

나무에서 웬 목소리가 났다. 어림잡아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목소리 쯤 되었다. 흠칫 놀란 그는 얼른 몸을 일으켰다.

 

“누, 누구야?”

“알아서 어쩌려고?”

 

가지 사이에서 누군가가 타카스기를 놀리는 말투로 말했다.

 

“글쎄. 상관없나.”

“응?”

“몰라. 죽일거면 죽이던가.”

 

 

그러더니 타카스기는 다시 자리에 누워버리더니 눈을 감아버렸다. 그제야 나무 속 목소리의 주인은 고개를 내밀었다. 긴토키였다.

 

그는 가뿐히 나무에서 내려오더니 타카스기의 옆에 앉았다. 바스락 하는 소리와 함께, 풀썩이는 소리가 들리자 타카스기는 눈을 떠 긴토키를 바라보았다. 은색 머리가 참으로 신기했다.

 

 

“흥, 재미없는 녀석. 누가 죽인 댔냐.”“치근덕대지마, 꼬마.”

“누가 꼬만데?!”

“됐고, 볼 일 없으면 꺼져.”

“흥, 네 놈이야말로. 여기 원래 내 자리라고?”

“뭐?”

“그러니까-. 내 자리라고. 내가 계속 여기 있었으니까.”

“하, 어이가 없군.”

“여기 있으려면 자릿세 내.”

“이건 무슨….”

“너, 갈 데 없잖아.”

 

 

막무가내로 말하는 긴토키가 기가 찼던 타카스기는 고개를 돌리려고 했다. 하지만 갈 데 없다는 그 한마디에 그의 시선이 꽁꽁 묶여버렸다.

 

“보여, 네 눈에서. 나랑 똑같아.”

 

긴토키는 타카스기와 눈을 마주했다. 타카스기는 갑자기 부딪히는 시선에 얼른 고개를 돌렸다.

 

“뭐가, 뭐가 보인다는 거야. 네가 뭘 알아.”

“외롭다는 거. 네놈 두 눈에서 외로움이 흘러넘친다고?”

 

 

긴토키는 타카스기를 보며 빙글 웃었다. 동정인가, 타카스기는 실소를 터트렸다. 웃음을 거두며 고개를 돌리자, 그제야 제대로 보였다. 자신을 내려다보며 싱긋 웃는 그가, 그의 눈이. 이상했다. 꼭 자신을 보는 것 같았다. 아, 저 놈이 말했던 것이 이건가.

 

동정심 같은 게 아니었다. 그렇다고 유대감이라고 말하기엔 이제 막 처음 본 놈이었다. 그래, 그것이다. 같은 입장. 그래서 이해할 수 있던 것이다. 서로가 얼마나 닮았는지, 얼마나 외로웠는지, 얼마나 자신을 봐주길 바랬는지.

 

 

“그러니까, 자릿세는 파르페로 부탁해.”

“누가 낸댔냐? 너야말로 요구르트나 가져와. 이제부터 여긴 내 자리니까.”

“하아? 여기 원래 내 자리였다니까? 어이!”

 

타카스기는 떽떽대는 긴토키를 등진 채 돌아누워버렸다. 긴토키는 이제 막 만난 놈에게 무시를 당한 것 같다며 잔뜩 표정을 구겼다.

 

 

“…타카스기 신스케.”

“앙?”

“‘어이’ 같은 거, 아냐.”

 

옆에서 들려오는 이름에 긴토키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이름을 말할 줄은 몰랐던 눈치였다.

 

 

“어, 어엉. 사, 사카타 긴토키. 파르페 잘 부탁한다.”

“파르페 같은 소리. 요구르트 안 사올 거면 저리 가.”

 

타카스기는 제 등 뒤로 칫, 하는 소리와 함께 풀썩 눕는 기척을 느꼈다. 그는 조용히 눈을 떴다. 눈에 하나, 둘, 별이 비쳤다. 지독했던 그 하늘은 어디로 가고 투명하게 까만 하늘이 온 세상을 덮었다. 미움도, 쓸쓸함도 모두 달래주는 밤 아래가 간만에 온기로 차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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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리고, 음악이 흐르면

긴수 전력 60분

WR. 고은


 



“하필 축제 날 비라니.”

 

히지카타는 거세게 내리는 비를 보며 중얼거렸다. 창 밖으로 사람들이 허둥지둥 비를 피해다니는 모습이 눈에 비춰졌다.

 

“모처럼 왔는데 아쉽게 됐구만, 부장나리.”

 

의자에 몸을 쭉 펴 앉은 긴토키가 시큰둥하게 말했다. 가게 안에서 옛 노래가 흘러나왔다.

 

“남 일처럼 말하지 마라. 너랑 온 거라고.”

 

히지카타는 그에게 눈을 흘겼다.

 

“에, 긴상은 오늘 나가지 말자고 했습니다? 케츠노 아나께서 비가 온다고 친히 말씀해주셨다고? 기어코 끌고 나간 게 누구시더라?”

“너, 다시 말해봐.”

“축제라니, 언제부터 그런 걸 다 챙기셨대. 결국 와서 뭐 하나 제대로 구경도 못하고 말야. 닭 쫓던 개가 따로 없구만?”

“…지금 비꼬는 거냐.”

“아닌데요-. 긴상이 꼬은 건 다리뿐인데요.”

“하, 됐다. 괜히 불러서 미안하다. 시간 낭비하게 했군. 먼저 간다.”

 

결국 히지카타는 자리를 떠버렸다. 짤랑. 가게 문에 달린 종소리가 울렸다. 창 밖으로 히지카타가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당황한 긴토키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노랫소리와, 사람들이 내는 소음이 뒤섞여 그의 귓가에 부서졌다.

 

 

 

비가 따가웠다. 그의 몸에 부딪히는 빗방울이 너무나 세서 그는 온 몸이 다 아팠다. 홧김에 가게를 나왔지만, 비를 맞다보니 잔뜩 올랐던 열이 식어버린 그였다. 그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원망스레 하늘을 쳐다보았다. 비는 어느 새 그쳐있었다. 까만 구름 사이로 언뜻언뜻 달빛이 비춰졌다.

 

그래, 잠깐이면 그칠 소나기였다. 잠깐 참으면 지나갈 상황이었다. 그것을 참지 못하고 긴토키에게 또 다시 상처를 주었다. 아무리 주위에서 귀신부장이니, 냉철한 사람이니 해도 긴토키에게만큼은 이성적이지 못했다. 그는 자신이 죄스러워졌다. 그는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발걸음이 점점 빨라져갔다.

 

 

 

히지카타는 고개를 들자 가게 앞에 서 있는 긴토키가 보였다. 그는 숨을 고르게 쉬려 애썼다. 막 뛰어온 탓이었다. 그는 긴토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눈을 똑바로 마주보았다.

 

“긴토키, 미안하다.”

 

긴토키는 그런 히지카타의 모습에 움찔했다.

 

“뭐, 나도 잘 한 거 없으니까.”

 

그의 말에, 히지카타는 마음이 놓인 듯 그제야 활짝 표정을 풀었다.

 

“그래도, 혼자 두지는 마라.”

 

긴토키가 시선을 돌리며 작게 말하자, 히지카타는 입술을 깨물며 웃음을 참았다. 그는 대답 대신, 긴토키의 손을 잡아끌었다.

 

“어어? 어디 가는데?!”

 

긴토키의 물음에도 히지카타는 그의 손을 잡은 채 말 없이 인파를 뚫고 지나갔다.

 

 

벌써 사람들이 많이 몰려있었다. 히지카타는 그 곳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여긴 어딘데?”

“…아, 시작한다.”

“응?”

 

피유우-, 펑-.

긴토키가 주위를 채 살피기도 전에 커다란 폭발음이 그의 귀를 울렸다. 곧, 하늘에 예쁜 불꽃이 피어올랐다.

 

 

“이거, 보고 싶었어. 너랑 같이.”

 

히지카타는 긴토키의 손을 꼭 잡으며 담담하게 말했다. 긴토키는 고개를 돌려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연이어 터지는 불꽃을 바라보는 그의 얼굴 위로 불빛이 비추어졌다. 그것이 퍽, 설렜다. 긴토키는 떨리는 미소를 지으며 시선을 하늘로 옮겼다.

 

히지카타는 맞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긴토키도 놓지 않을 것처럼, 꼭 깍지를 끼었다.

“같이 있게 해줘서, 고마워.”

“나야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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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 없이 나타나는 건 비 뿐만이 아니다.

WR. 고은

 

 

 

 

 

“마지막으로 날씨를 전해드리면서 마치겠습니다. 케츠노 아나?”

“네, 케츠노 아나운서입니다. 현재 에도 곳곳에 벚꽃이 피기 시작했는데요, 이번 주 내에 만개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하, 지, 만! 호사다마라고 하죠? 안타깝게도 비가 내린다고 합니다. 언제 올지는 몰라요? 모쪼록 잘 대비하시길 바래요. 특히, 거기! 업무 때문에 다크서클이 내려앉은 당신! 곧 썩어가는 폐품마냥 하품하는 당신! 언제 올지 모르는 건 비 뿐만이 아니랍니다! 우산을 꼭 챙기지 않으면 큰일 날지도? 그럼 저는 이만!”

 

 

“얼레? 저거 완전 히지카타 씨 아닙니까? 썩어가는 폐품, 히지카타 씨?”

티비를 보던 오키타는 손으로 히지카타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 옆에서 푹 꺼진 눈을 겨우 뜨며 하품하던 히지카타는 곧 입을 다물었다.

“아아. 대비는 늘 하고 있다, 아나운서 양반. 양이지사 놈들을 베어버릴 대비라면 말이야.”

“헤에, 글쎄. 지금은 꼬질꼬질하게 때 묻은 빨랫감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데요. 냄새난다구요?”

오키타는 코를 쥐며 어디서 가져온 건지 모를 스프레이를 뿌렸다.

 

“아악, 눈! 네놈, 그거 살충제 아니냐!”

“에-, 해충은 박멸해야죠. 죽어, 히지카타.”

히지카타는 오키타가 뿌리는 스프레이를 막으려 손을 마구 휘저었다.

“어이, 소고. 그만해라. 안 그래도 썩어가는 쓰레기에 스프레이를 뿌리면 불난다고?”

복도에서 히지카타와 오키타를 본 곤도는 방으로 들어와 오키타를 제지했다. 그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행동을 멈추었다.

 


“…곤도 씨. 그거 결국 내가 쓰레기라는 소리잖아.”

“하하하하. 그런가. 아무튼, 너도 좀 쉬엄쉬엄 해라. 가끔은 네 몸도 좀 보살피라고.”

“이게 다 당신들이 말썽을 피워놓으니까 생기는 일이잖아! 꼭 내가 일부러 일을 찾아서 하는 것처럼 말하는데, 워커홀릭 같은 거 아니거든?!”

“그래그래, 토시. 알겠다고. 그런 의미에서 대원들하고 벚꽃 구경이라도 가려는데, 어떠냐?”


“하아? 미안하지만 난 됐수다. 그 시간에 차라리 잠을 자겠어.”

“그러지 말고, 토시. 기분전환도 할 겸 말이야.”

“그래요, 히지카타 씨. 진짜 썩어 뒈지고 싶습니까? 그러면 나야 좋지만.”

“아, 그래. 썩어 뒈지고 싶으니까. 한 발자국도 못나가겠다고, 지금.”

“흐음, 그러냐. 알겠다. 그러면 서류는 그만 보고 오늘만큼은 쉬어라.”

 

곤도는 히지카타의 어깨를 두드렸다. 히지카타는 그것이 기운 내라는 의미처럼 느껴졌다. 그는 곤도와 오키타가 나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빨리 들어가 눕고 싶다고 간절하게 생각했다.

 

 

잠시 뒤, 둔영 마당이 소란스러워졌다. 대원들이 신에 겨워 떠드는 소리가 방 안으로 파고들었다.

 

“후우, 신났군.”

그는 얼굴을 찌푸리더니 방문에서 돌아누웠다. 그래, 빨리 가라. 그는 속으로 생각하며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곧 그들이 나간 건지, 그가 잠에 빠진 건지 바깥소리가 아득해졌다.

 

 

 

“세상모르고 자는군.”

말하는 낮은 목소리에 옅게 웃음이 배었다. 언제부터 와 있던 건지, 타카스기는 히지카타의 옆에 앉아있었다. 그는 제 품에서 곰방대를 꺼내들었다. 사락, 옷감끼리 스치는 소리가 가볍게 귓가에 맴돌았다. 그 때, 그의 손목이 붙잡혔다.

“자는 사람 옆에서 피울 셈이냐.”


히지카타였다. 그는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고 고갤 돌려 타카스기를 바라보았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그가 보였다.


“깼군. 나 때문인가.”

“그렇다고 하면, 가려고?”

히지카타는 타카스기를 향해 씩 웃어보였다. 그 모습에, 붙잡힌 손목을 내리며 타카스기는 작게 입 꼬리를 올렸다.


“글쎄. 가길 바라는 건가.”

“그게 왜 그렇게 흘러가는 건데?!”

“흐응?”

타카스기의 말에 히지카타는 얼른 일어나 그와 시선을 맞추었다. 그러자 타카스기는 눈썹을 치켜세우며 그를 바라보았다.

“뭐, 뭐.”

“대답은?”

“아니지, 당연히.”

그제야 타카스기는 만족한 듯 표정을 풀었다. 히지카타도 덩달아 표정이 풀어졌다.

“언제부터 온 거냐.”

“글쎄.”

“위험하다. 네 신분은 알고 들어온 거냐?”

“흐음. 내 신분을 알고도 만나는 넌. 위험하지 않은가?”

타카스기는 눈을 가늘게 뜨며 놀리는 투로 말했다.

“그거야…. 아무튼, 사람들이 언제 들어올지 몰라. 나가지.”

 

히지카타는 눈을 슬쩍 피하더니, 이불을 걷고 서둘러 일어나려 했다. 하지만, 이번엔 타카스기가 그의 손목을 붙잡았다.

 

“나는 여기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만.”

 

그러더니 그는 히지카타를 제게 끌어당겼다. 잠이 깨긴 했지만 몽롱함이 가시지 않았던 히지카타는 힘을 줄 새도 없이, 타카스기의 품에 안겨버렸다.

 

“읏! 무슨 짓이야?!”

당황해서 목소리가 커진 히지카타는 그의 팔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타카스기는 다른 한 팔로 그의 배를 감싸 꼭 끌어안았다.

 

“꼭 싫은 것처럼 구는 군.”

 

타카스기는 제 입술을 히지카타의 목에 갖다 대었다. 그리고 그 위로 입술을 달싹였다. 그 덕에 히지카타는 온 신경이 곤두섰다.

 

“으읏, 그런 건. 흐으.”

“그런 건?”

“흐읍, 거기에 입술, 대고, 으응. 말하짓, 마…흐응….”


타카스기가 살짝 고개를 돌리자, 새빨개진 귀와 입술을 깨물며 제 숨소릴 막는 히지카타가 보였다. 그것이 못내 사랑스러운 양, 그는 웃음을 터뜨렸다.

 

“뭐가 웃기다고 웃어?!”

“귀여워서.”

“아앙?!”

“…”

 

타카스기는 대답이 없었다. 히지카타는 무슨 일인가 싶어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그와 눈이 마주쳤다. 타카스기는 피하지 않고 지긋이 바라보았다. 짧은 순간, 히지카타는 그 눈에 사로잡힌 기분이 들었다. 아차, 싶은 그는 멍해진 제 입을 다물려고 했다.

 

“흡…!”

 

그의 입을 막은 것은 타카스기였다. 그는 히지카타에게 입을 맞추며 한 손으로 그의 머리를 감쌌다. 갑작스레 숨이 막힌 히지카타는 벌어지는 입술 사이로 깊게 숨을 뱉었다. 그리고는 진정을 한 것처럼, 커다래진 눈을 감으며 타카스기의 옷자락을 꼭 잡았다.

 

 

“흐응….”

입술을 떼자 히지카타가 얇게 신음을 흘렸다. 그는 타카스기에게 기댔다. 그의 심장이 뛰는 소리가 들렸다.

 

“사랑한다.”

한 글자, 한 글자에 그의 심장 소리가 더욱 커졌다. 그 소리가 온통 저를 가득 채워서, 되려 제 심장이 더욱 쿵쿵대는 히지카타였다.

 

 

“이제 정말 올 것 같군.”

타카스기는 슬며시 제게서 히지카타를 떼어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히지카타는 이미 방문 앞에 선 타카스기의 등 뒤로 다가갔다.

 

“가는 거냐.”

“그래.”

“…타카스기.”

 

한 발 내딛으려는 타카스기를, 히지카타는 불러 세웠다. 그리고 한 발짝 다가가 그를 껴안았다.

 

“싫어한다는, 그런 게 아냐. 사랑한다, 내가 더.”

 

그를 감싼 팔에서 심장이 뛰는 울림이 전해졌다. 타카스기는 조용히 손을 올려 그의 손을 감쌌다. 꼭 쥔 손에서 따뜻함이 퍼졌다.

 

이제는 정말 보내야할 때였다. 히지카타는 아쉬운 듯 천천히 제 팔을 풀었다. 타카스기는 방문을 열었다.

언제 온 건지,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 냄새와 함께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땅은 이미 젖어있었다. 그 위를 흐르는 빗물을 타고 벚꽃이 춤을 추었다.

 

“비가 꽤 내렸나보군.”

타카스기가 중얼거렸다. 그 사이, 히지카타는 우산을 그에게 건넸다.

“가져가라.”

그는 그것을 받아들 것처럼 팔을 뻗었다. 그러나 그의 손은 우산을 지나쳐 히지카타를 끌어안았다.

“고맙다. 돌려주러 오마.”

 

 

조용히 귀에 속삭였던 타카스기는, 붙잡을 새도 없이 그를 떠났다. 히지카타는 멍하니 그가 있던 자리를, 또 그가 지나간 자리를 내다보았다. 하나하나 온기가 남아있는 듯 했다.

 

 

“아나운서 말이 맞군.”

약속 없이 찾아와, 기약도 하지 않고 떠나는 것이. 비도, 너도, 그리고 우리도.

 

쉬이-, 바람이 한 번 불었다. 그 덕에 꽃잎이 흩날렸다. 팔랑이며 날갯짓 하는 나비처럼, 바람을 탄 것처럼 자유로이. 바깥을 흐릿한 풍경 속, 저들만이 유난히도 분홍빛을 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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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이란 이름 아래

긴수 전력 60분

WR. 고은

 

 

 

 

 

어이, 타카스기. 네놈이 나 보다 먼저 죽는 건 사양이다.

누가 할 소리. 네 시체 따위 볼 일 없게 해라.

 

등 뒤로 오갔던 그 말들이 왜 갑자기 생각이 난 건지. 이 상황에서 왜 그 날이 다시 떠오른 건지.

 

 


“여어, 타카스기군. 오랜만이다?”

“이런 상황에서 잘도 인사하는군.”

“이런 상황이니까 만난 거잖아? 너하고 나.”

 

우리는 조직에서 함께 길러졌고, 각기 갈라졌다. 그리고 세력을 키우고 성장했다. 백야차라는 이름으로, 귀병대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곳도 달랐고 취급하는 사업도 달랐다. 해서, 다시는 만나지 않을 줄 알았다.

 

“너하고 손을 잡다니, 희대의 실수다.”

“에, 그거 긴상을 두고 하는 말입니까?”

“너 아니면 누구겠냐. 방해다. 네 놈은 뒤에서 떡이나 받아먹어.”

“너야 말로 우유나 마시고 있지 그러냐? 몇 년이 지나도 그대로라니. 영양부족은 아닐까나?”

다치지 말란 얘기다.”

“응?”

 

우리가 너와 손을 잡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처음에는 놀랐고 다음으론 기뻤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무서웠다. 네가 위험해질까봐, 네가 이 일로 죽어버릴까봐.

 

“타카스기.”

“왜.”

“나, 이제 어린애 아니라고?”

“뭐?”

“그렇게 걱정하는 얼굴, 하지 말라는 거야. 제 앞가림은 하니까.”

“하아? 꽤 자신만만하군.”

“네가 하는 걸, 내가 못할 것도 없지.”

긴토키, 기억나나.”

“뭐가?”

“우리가 조직에서 나왔던 날.”

“아아, 기억하지.”

“다시 한 번 말하지. 난 아직도 네 놈 송장 따위 보는 건 사양이다.”

“…”

“그러니까 살아라. 살아 돌아오면. 할 말, 있으니까. 반드시 살아남아라.”

 

다신 만나지 못할 줄 알았다. 그래서 말하지 못했다. 나만 숨기면 될 일이었으니까. 나만 입 다물고 아무렇지 않은 척 하면, 평소처럼 지내고, 평소처럼 웃고, 아무 눈물 흘리지 않고도 헤어질 수 있으니까. 이대로 잊히겠지, 이대로 묻히겠지. 갈라진 후에도 되살아나는 감정을, 기억을 억지로 짓눌렀다. 그러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운명은 그리 간단하진 않은 모양이었다. 우리는 다시 만났고, 다시 동료로서 등을 맡겼다. 그렇다면 더 이상 숨길 이유가 없다. 나는 너를 믿고, 너는 나를 믿으니. 내가 이 믿음에 기대지 못할 이유가 없다. 여기서 네 손을 잡았으니, 다시는 놓지 않을 테다. 두 번 다시 헤어지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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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이 유독 붉을 때 생길 일을 조심하라.

즈라른 전력 60분 연성

 WR. 고은

 


 

 [지각도 습관이다] 후편.




“긴토키 자식, 또 지각이군.”

 

이제 카츠라 입에 긴토키의 지각이 붙어버린 듯 했다. 카츠라는 한숨을 내쉬었다. 대체 뭘 하느라 매일 이렇게 늦는 건지 그는 또 긴토키 걱정에 빠졌다.

 

“너, 네가 어째서…. 으윽.”

긴토키 앞으로 검은 정장 하나가 쓰러졌다. 그 남자와 마찬가지로, 긴토키의 주변에는 사내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긴토키는 고갤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제 제대로 서 있는 사람은 저 뿐인 것 같았다.

 

“호오. 이게 무슨 일인가, 긴토키.”

 

낮은 음성이 그가 있는 창고 안에 울려 퍼졌다. 그는 뒤를 돌아보았다.

 

“아, 도련님 납셨군. 어디 갔다 이제 오시나?”

“내 안부를 묻기엔 네놈 상태가 다 불쌍하군.”

 

그는 타카스기였다. 창고 문을 뒤로 하고 천천히 긴토키에게 다가온 타카스기는 한껏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그의 말대로, 긴토키는 이제 곧 쓰러져도 무방할 만큼 피투성이였다. 긴토키는 가쁜 숨을 내쉬면서도 씩 웃어보였다.


“이거? 네놈이 끌고 다니는 아저씨들하고 한판 놀아준 거지.”

“그래서, 타깃은?”

“타깃? 알까 보냐. 난 사람 죽이는 거, 안하거든.”

“뭐?”

“지금까지 받은 타깃들, 살아있다는 말이지. 그리고 마지막 타깃도.”

“하, 웃기지도 않는군.”

 

타카스기는 긴토키의 멱살을 잡았다. 그리고는 바닥에 내팽개치더니 그의 목을 발로 한껏 지르밟았다.

 

“네가, 언제부터. 더러운 오물에서 살던 놈이, 언제부터 고고한 척이야.”

“으윽. 긴상은, 말야. 켁, 커흡. 사람 죽이지 않기로. 약속, 했거든.”

“네놈은 나와의 약속만 유효하다고. 아니면 잊은 건가? 그렇다면 잊게 해주지. 네놈 삶의 고통도, 네가 사랑하는 그 놈 기억에서도.”

 

타카스기는 발에 무게를 실어 긴토키의 목을 더욱 짓눌렀다. 덕분에 긴토키의 얼굴은 새하얘졌다가 푸르게 변했다. 그는 한 팔로 타카스기의 발을 떼어 내려 했지만 되려 힘이 더 들어갔다. 긴토키는 허우적거리며 숨을 제대로 뱉어내지 못했다. 그의 다른 손은 애타게 제가 떨어뜨린 검을 찾고 있었다.

 

“아, 그 양이지사는 걱정 말아라. 내가 대신 잘 돌봐 줄 테니까 말이야. 네놈 대용품으로도 괜찮을, 커윽.”

 

타카스기의 배에 은색으로 빛나는 검이 관통했다. 그 검을 타고 그의 피가 뚝뚝, 긴토키의 팔에 흘렀다.

 

“그 놈을 돌봐 줄 사람은 나다. 내가 지켜.”

“너, 이 자식….”

 

긴토키는 잡은 검을 비틀었다. 그러자 타카스기가 피를 토했다. 덕분에 그 피가 고스란히 제 위로 쏟아져 내렸다. 그가 검을 뽑자, 타카스기는 긴토키 위로 쓰러졌다.

 

“하….”

 

긴토키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갈 수 있다. 이제, 제 시간에 맞춰 갈 수 있다. 그는 생각했다.

 

“아니, 네놈은…. 절대 못가.”


긴토키는 제 귓가에 퍼지는 타카스기의 목소리와, 옆구리에서 파고든 칼날이 동시에 겹쳐졌다. 긴토키는 제대로 숨을 쉬지 못했다. 역류하는 피와 함께 목이 막히는 기분이었다. 시야가 자꾸만 흐릿해졌다. 눈이 자꾸만 감겼다.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가야했다. 저를 기다리는 이에게로. 그의 눈에 열린 창고 문으로 벌써 석양이 지는 것이 보였다.

 

즈라가 많이 기다릴 텐데. 바보 같은 놈이라 미련하게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을 텐데. 움직여. 움직여라, 제발.

 

 

새빨갛게 불타는 저녁의 햇빛이 카츠라는 괜히 무서웠다. 꼭 짙게 흘린 피 같았다. 벌써 몇 시간이나 지났다. 아무리 늦어도 그는 이 만큼 늦는 사람이 아니었다. 게다가 약속까지 했다. 늦지 않겠다고. 이제 다 끝났다고. 대체 뭐가 끝났다는 것일까. 평소와는 다른 불안함이 그를 엄습했다.

“대체 어떻게 된 거냐, 긴토키….”

카츠라는 다시금 창밖을 바라보았다. 붉은 노을이 점점 흩어지는 것이 보였다.


아무 일이 없다면, 빨리 와라. 긴토키. 오늘만큼은,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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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각도 습관이다

WR. 고은

즈라른 전력 60분 연성

 




“긴토키 자식, 또 지각이군.”

 

카츠라는 조금 짜증이 일었다. 그는 늘 제 때 나타났던 적이 없었다. 물론 한두 시간이나 기다리게 하진 않았다. 하지만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매번 드는 건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었다.

그는 손목시계를 보다가 행인들 보기를 번갈아했다. 뒤에서 누가 오는지 모를 만큼 온 신경을 기다리는 데에 쏟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 뒤에 있던 누군가가 와락, 그를 안았을 때, 카츠라는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렸다. 그 덕에 몸의 중심이 뒤로 쏠려 제가 안기는 꼴이 되었다. 그는 고개를 살짝 들어 저를 안은 이를 확인했다. 긴토키였다.

 

“즈라, 많이 기다렸어?”

“즈라가 아니다, 카츠라다. 이러 놓게.”

“흐응, 매정하게 구는 거야?”

“자네, 내가 누누이 말하지 않았나. 지각 좀 하지 말라고! 어떻게 한번을”

“미안해, 기다리게 해서.”

 

늘 그를 기다리게 하는 자신이 미웠다. 늘 미안하단 말만 하는 자신이 한심했다. 그런 자신을 기다려주는 그가 고마웠다. 지금처럼 짜증을 내어도, 그게 자신을 걱정했기에 안심하는 소리임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에게 더욱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긴토키는 카츠라를 더 세게 품에 껴안았다.

 

“…자넨 항상 이런 식이지.”

“이런 내가 좋은 거잖아.”

“칫, 말만 잘하는 놈. 날 언제까지 기다리게 할 셈인가.”

“오래 안 걸릴 거야. 이제 곧 끝나니까.”

“응? 그게 무슨 말인가?”

“아냐. 그러니까, 매일 지각 안하도록 연습하고 있다고. 그거야, 그거.”

“어째 웃는 게 이상한 것 같다만. 그럼, 약속하는 거다.”

“응, 약속.”

 

긴토키는 부드럽게 말하며 제 얼굴을 카츠라의 목에 파묻었다. 그의 낮은 음성이 카츠라를 깊이 울렸다.

 

 

 

지이잉-.

긴토키의 주머니에서 핸드폰이 울렸다.

[다음 타깃은 양이지사 카츠라다. 이번이 마지막이니까, 반드시 처리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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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카긴] 보고싶었어.

2016. 7. 13. 03:47 from 은혼

 

 

 

 

보고싶었어.

꼬요님께.

WR. 고은

 

 

 

 

“어이, 타카스기.”

긴토키의 목소리가 들린다.

“일어나, 타카스기.”

꿈인가. 아득하게 들린다.

“일어나, 일어나라고! 제길.”

또 긴토키가 말한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 왜지. 아까는 분명 싸우는 중이었다. 피비린내도 나지 않는다. 전장은 아닌데, 그럼 여긴 어디지?

 

“어이, 긴토키! 그만 하게. 그러다 영영 못 돌아오면 어떡하나!”

이번엔 즈라 목소리다.

“그래, 킨토키. 자네도 쉬어야 한다네. 어서.”

이번엔 타츠마가 긴토키에게 말한다. 그래, 긴토키. 네가 쉬어야 한다고. 누굴 걱정하는거야.

“너희들 먼저 들어가. 조금만 더 보다 들어갈테니까.”

곧 두 사람의 발자국 소리가 멀어진다. 즈라하고 타츠마가 나간 것 같다.

 


“어이, 타카스기. 죽지 말라고 했잖아. 부탁했잖아.”

긴토키가 조용히 중얼거린다. 목소리가 좋지 않다. 꾹 참고 말하는 것 같은데, 녀석. 대체 내가 얼마나 망가졌길래 다들 그러는 거지.

 

아, 뭔가 떨어진다. 물 같은 게. 자꾸만 떨어진다. 뭐지, 비 냄새는 안 나는데.

“타카스기, 죽어야 하는 건 나다. 네가 죽어선 안 돼. 네가 죽으면….”

아, 긴토키였구나. 목소리에 눈물이 가득하다. 안되는데, 저렇게 혼자 두면. 일어나야 해. 일어나야 한다고. 움직여, 눈 떠. 제발 일어나, 이 몸뚱아리야.

 

 

“일어났다.”

“응?”

“일어났다고, 바보야.”

타카스기는 긴토키를 보았다. 그는 눈물범벅이었다. 타카스기는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려 그의 뺨에 가져다대었다. 뜨겁게 달아오른 뺨이 손바닥으로 느껴졌다.


“내가 죽으면 어떻게 되는데.”

“…안 돼.”

“왜?”

“보고 싶으니까. 계속 보고 싶을 거니까.”

타카스기는 작게 웃어보였다.

“그럼, 울지 마.”

“…울긴 누가 울었다고.”

“바보. 얼굴에도, 팔에도 다 눈물투성이거든.”

 

긴토키는 아닌 척, 옷깃으로 눈물을 훔쳤다. 그 모습에 타카스기는 조그맣게 소리 내어 웃었다.

“보고싶었어.”

그제야 긴토키도 눈물을 멈추었다. 그리고 타카스기를 따라 작게, 웃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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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의 절정은 불꽃놀이

둘기님께.

WR. 고은

 

 

 

 

“유카타, 꼭이야!”

 

그렇게 당부하고 헤어진 지 1시간 째. 오키타는 문 앞을 서성였다. 이렇게 입어도 될까, 역시 다른 게 나은가 하면서 다시 거울을 보는 그였다. 대원들은 그저 홀린 듯 그 모습을 좇았다. 그들이 함께 지낸 이래 그가 저리도 고민하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심지어 눈에 뻔히 보일만큼.

“어이, 소고. 그 정도면 됐다. 그러다 늦겠어.”

보다 못한 히지카타가 한마디 던졌다. 그 말을 듣더니 오키타는 동작을 멈추었다.

“…그렇죠? 고마워요, 히지카타씨.”

“어?”

그가, 히지카타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이것 또한 좀처럼 없는 일이었다. 상황을 지켜보던 대원들은 놀라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역시, 당신 충고는 사양이야. 죽어, 히지카타.”

오키타는 어디서 꺼냈는지 모를 대포를 히지카타에게 쏴주고는 밖으로 나가버렸다.

 

 

멀리서 오키타가 보였다. 카구라는 그를 발견했으나 모른 척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면서 오나, 안오나 흘끗흘끗 그의 모습을 확인했다.

“잠시만요.”

한 무리가 카구라의 앞으로 지나가려했다. 그녀는 주춤하며 뒷걸음을 쳤다. 그들이 지나가고, 다시 오키타가 오던 곳을 돌아보는데, 그는 없었다. 시야에서 놓쳐버린 그를 찾으려 이리저리 둘러보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어이, 누구 찾냐.”

예의 그 목소리가 사람들 속에서 들렸다. 카구라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가 서 있었다.

“너…. 왜 이렇게 늦냐, 해!”

“안 늦었거든. 네가 못 찾은 거지.”

“쳇. 유카타, 입었네?”

“어? 어, 뭐. 가자.”

카구라는 오키타가 급하게 말을 돌린다고 생각했다. 부끄러운 모양이구나, 그렇게 생각하니 웃음이 났다. 그녀는 그 웃음을 감추지 않고 그의 옆으로 따라갔다.

 

 

펑. 퍼엉-.

“와아. 이쁘다, 해.”

축제의 흥이 고조를 달했고, 모두가 한데 모여 불꽃놀이를 구경했다. 그 속에서 카구라는 마냥 신기한듯, 황홀한 듯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오키타는 옆에서 푹 빠져든 카구라를 한번 보더니 방금 터진 불꽃으로 수놓아진 하늘을 바라보았다.

“흐음? 저게 어디가 이쁘냐. 꼭 사람 베었을 때 솟는 피 같은데.”

“으으, 이 사디스트! 낭만도, 분위기도 모르냐, 해!”

“낭만이라…. 낭만은, 여기 있어.”


그는 고개를 숙이더니, 카구라의 볼에 입을 맞추었다. 갑자기 다가온 따뜻한 촉감에 카구라는 두 눈이 커다래졌다. 그녀는 몸이 굳은 것처럼 고개를 돌리지도, 손가락을 까딱하지도 못했다. 

오키타는 입술을 떼고 카구라에게 시선을 맞추었다. 부끄러운건지, 제게 시선을 주지 않는 카구라에게 마냥 웃음이 났다.

“너, 볼 빨개졌다.”


정말 그랬다. 그가 입을 맞춘 자리에 마치 꽃이 피듯, 뺨이 불그스름하게 번졌다. 카구라는 여전히 아무 말도 못하고 펑펑 터지는 불꽃에 시선을 고정했다.

오키타는 사랑스럽다는 웃음을 띠며 조심스레 그녀의 손을 잡았다. 조금 움찔거리더니 카구라도 그의 손에 깍지를 꼈다. 마치 하늘에 쏘아올린 불꽃이 퍼지는 것처럼, 두 사람의 얼굴에 행복이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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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하늘, 흰 연기.

타카시님께.

WR. 고은.

 

 

 

 

 

끼이익.

등 너머로 철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얼마나 오래된 건지, 녹슨 소리가 귀를 긁었다. 연이어 슬쩍슬쩍 바닥을 끄는 소리가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웬 연긴가 했더니, 네놈이냐.”

모퉁이에서 목소리가 들려와 고갤 돌리니, 타카스기였다.

“이 시간에 누가 왔나 했더니, 너냐.”

그는 가볍게 말을 무시하고 내 쪽으로 왔다.


“지금 수업시간 아니냐?”

“그래서?”

“수업 이탈 50점, 옥상 출입 30점, 교내 흡연 100점.”

“꼴에 선도부장이라고. 그러는 너도 마찬가지잖아?”

“난 예외지.”

“허? 왜 예왼데?”


그는 묻는 말에 대답은 않고 한 발자국 더 가까이 다가왔다. 당황스러운 나머지 뒷걸음이 절로 쳐졌다.

“아아? 뭐, 뭐야?”

천천히, 또 한 발자국 다가오는 타카스기에게 나는 또 한 발자국 뒷걸음을 쳤다. 툭, 등에 뭔가 부딪히길래 돌아보니 벽이었다. 이제 발 끝 바로 앞에 그가 있었다.

“왜냐면,”


그는 내 입에 물려있던 담배를 빼앗고는 그대로 입을 맞추었다. 부드러운 그 느낌에, 그리고 갑작스러운 이 순간에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그가 입을 벌리는 동시에 내 입이 벌려졌다. 그 사이로 그가 슬며시 안쪽을 훑었다. 순간 입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올 것 같아 입을 떼려 했더니, 다른 손으로 내 뒷목을 끌어당겼다. 이번에 그는 깊숙하게 파고들었다.

 

 

“후.”

“하아, 하읍. 뭔데, 갑자기?”

“담배. 피고 싶으니까.”

그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내가 담배냐는 내 말을 또 무시하더니 그는 담배가 들린 제 손을 쳐다보았다.

“아, 다 탔네.”

“…그거 막 꺼낸 건데.”

“푸흡.”

그는 그렇게 짧게 실소를 터트리더니, 이내 소릴 내며 활짝 웃었다.


“아? 왜 웃는데?!”

“하아, 그냥. 하나 줘.”

그는 간신히 웃음을 멈추는 양을 하고는 손을 내밀었다.

“이상한 놈.”

나는 그에게 한 개비를 건넸고, 다른 하나를 꺼내 내 입에도 물었다. 그는 그것을 입에 물더니 또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었다.

“…또 뭐?!”


“불.”

그는 내 담배 끝에 불을 붙여주었다. 제 것에도 붙이더니 난간으로 걸어나갔다. 그가 지나가는 자리마다 흰 연기가 따라 피었다. 그리고 나도 그 연기를 따라 드리워진 그림자 밖으로 나왔다.


그는 옆에서 기척을 느끼고는 고갤 돌렸다. 나와 눈이 마주친 것도 잠시, 다시 바깥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면서 생긋 웃는 것이다. 또 심장이 빨리 뛰었다. 방금 전 일이 생각나 나는 얼른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더럽게 파란 하늘이구만. 눈 시릴 만큼 파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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